농수산물 유통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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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배추 한 포기에 2천원에 이른다는 사실은 경제성장에 따라 새로운 문제가 계속 발생함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종래에 가장 어려운 문제였던 실업·식량부족·외환위기 등은 그 동안의 고도성장에 힘입어 상당히 해소된 대신, 공해·임금문제·인력부족·농수산물 파동 등이 새로운 문제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경제성장이란 단적으로 말해서 문제를 바꾸는데 불과하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공업화와 더불어 농수산물 값이 오르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현상이고 또 우리도 지난 10여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실감했다.
생선·오징어·김 값 등이 얼마나 비싸지고 먹기 어려워 졌는가를 생각하면 족할 것이다. 경제성장에 따른 농수산물 가공수출의 증대와 소득증대에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식생활 향상 욕구가 겹쳐 농수산물 값 상승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추세로 볼 때 요즘과 같이 배추 값이 오르는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귀결이라 볼 수 있다.
소채류에 대한 소비가 계속 늘어감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은 별 변동이 없다.
즉 75년에 3백만t 생산을 돌파한 이래, 76년 3백 21만t으로 높아졌다가 77년에 3백 6만t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금년엔 3백 45만t을 목표했으나 한발과 장마로 계획보다 20%∼30%정도 감산될 전망이다.
도시의 확대와 농촌 노동력의 부족 때문에 채소생산량이 크게 늘기는 어려운 여건인데, 천후조차 불순하면 채소생산에 큰 타격이 올 것은 뻔하다.
우리 나라에 있어 배추는 생필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쌀과 마찬가지로 배추는 수급과정에서 일시적인 차질만 나도 값이 급변한다.
서울 「아파트」지대에선 배추 한 포기에 3천원까지 간다 한다.
배추는 고추나 마늘·쇠고기와는 달라 수입도 할 수 없으므로 가격걱정에 속수무책이다. 사실 이제까지는 배추문제엔 별로 정책적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았다.
그러나 어느 새에 신경을 안 쓰면 안될 단계까지 와버렸는데 계속 무관심하다가 금년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따라서 배추를 비롯한 소채류의 생산에서 유통·보관·배급의 모든 과정을 근대화해야할 과제에 대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정책적 관심을 갖고 여러 지원책을 강구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된다.
특히 배추는 생산자 가격과 소비자 가격에 7∼8배의 차이가 나는데 이런 중간 「마진」의 과다누출은 유통 「채널」의 근대화를 통해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공장을 세우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채소류를 많이 생산하여 싸게 먹도록 하는 것도 국제수지개선이나 물가 안정에 큰 기여가 됨을 인식해야겠다.
배추 한 포기에 2천원이나 하여 김치도 마음대로 못 담가 먹는 형편에서, 아무리 고도성장의 실적을 자랑해봐도 오히려 반감만 불러일으키기 쉽다.
최근의 배추파동이 단순히 금년의 천후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경제성장에 따른 구조적인 것임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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