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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로」!「러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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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화기를 처음 발명한 「그레이엄·벨」이 귀머거리의 교사였던 사실은 좀 「아이러니컬」하다. 그는 한때 음악교사도 했었다.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즐거운 소리를 들려주는 일을 그는 한 해냈다.
오늘의 사람들은 월세계에서 들려오는 우주비행사의 소리를 듣고도 별로 신기해하지 않는다. 강물이 흘러 전등에 불이 켜져도 신기하지 않는 것과 같다. 전화는 그처럼 우리생활의 도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소련과 우리나라가 비로소 직접 전화통화를 했다는 「뉴스」는 신기하기만 하다.
「이념의 장벽」은 때때로 현대인을 이렇게 바보로 만드는 것 같아 더 한층 냉소를 짓게 된다.
하긴 요즘의 국제기상은 이미 그 정치의 벽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미국과 소련은 1963년부터 권력의 핵심부에 「적색전화」를 가설하고 「정치비상」에 대비하고 있다. 「워싱턴」과 북경, 「파리」와 「모스크바」, 「런던」과 「모스크바」, 「모스크바」와 북경, 서독과 동독, 동경과 북경.
이른바 「호트·라인」이란 이름으로 「정치와 이념의 벽」들을 뚫고 전화가 가설됐다.
서울과 평양사이에도 역시 23회선의 전화선이 매어져 있긴 하다. 「남북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른 것이었다. 한때 세계의 「매스컴」들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두 도시사이에 전화가 놓여졌다』고 빈정대는 보도를 한 일도 있었다.
바로 이 전화가 귀머거리가 된지 벌써 4년이나 지난 사실은 이제 어떻게 설명해 할지 잠시 주저하게 된다. 북한의 고집이야말로 「이념」도 「정치」도 아닌 것 같다. 더구나 우리는 이념과 체제가 다른 「쿠바」·「루마니아」·「유고슬라비아」와 이미 공식적인 전화를 했었다. 소련마저도 이제 우리의 『핼로!러시아』소리를 듣고 수화기를 들었다.
소련은 그동안 비록 대문은 아니지만 창문정도는 하나씩 우리를 향해 열고 있었다. 요즘은 그 창문이 점차 중문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인상이다. 우리의 정부 각료인 보사부장관이 정식「비자」를 받아 소련에서의 WTO회의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분명 사람이 드나 들 수 있는 중문 정도를 열어 놓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우리의 눈엔 언제나 「포커·페이스」로만 보이던 소련의 표정이 이젠 미소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도 같다. 정작 미소를 지어야 할 이웃의 북한은 험상궂어만 가는데, 오히려 먼 이웃이 가깝게만 생각된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청신호인지 아닌지는 아직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적신호가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이제 우리여자배구 선수들이 한차례만 맞상대인 중공을 이기면 태극기를 보는 소련사람의 눈은 또 달라질 것이다. 어디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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