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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되는 드라마·예능엔 꼭 있다 … 스릴러 혹은 추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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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호흡 한번 가다듬기 힘든 긴장감, 관객과의 치열한 두뇌 게임…. ‘서스펜스(suspense)’는 영화의 전유물이었다. 안방 TV가 변모한다. 스릴러 드라마, 추리 예능이 TV에서 하나의 흐름을 이뤄가고 있다. 가족을 잃은 남자의 복수극을 다룬 KBS2 수목드라마 ‘골든크로스’는 초입부터 시청자를 빨아들인다. 지난 줄거리를 짚어주는 사전 영상은 30여 초간 최대 40컷을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1초도 안 돼 훅훅 바뀌는 화면에 드라마가 시작하기도 전에 숨이 가빠진다.

지난 4월 방송돼 화제를 모은 SBS 스릴러물 ‘쓰리 데이즈’ 12회의 경우 드라마 초반 1분의 장면 컷만 총 35개였다. 같은 날 방송된 MBC ‘앙큼한 돌싱녀’ 14회에 나온 17컷(초반 1분)의 갑절이다.

SBS 김영섭 드라마국장은 “스릴러물은 일반 드라마보다 장비도 많이 필요하고 속도감 있는 편집을 위해 촬영 분량도 많기 때문에 연기자나 제작진 모두 훨씬 힘들지만 한국 드라마가 새로운 형식에 도전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해 계속 시도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T V가 서스펜스에 빠졌다. 출연자들이 살인 사건 현장의 용의자로 추리게임에 참여하는 JTBC ‘크라임 씬’.

 스릴러물이 지상파 드라마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KBS의 경우 권력층의 음모와 부조리에 맞서는 한 남자의 분투를 그린 ‘빅맨’과 ‘골든크로스’가 황금시간대에 방영된다. 이미 SBS는 국가적 음모를 다룬 두 편의 드라마 ‘쓰리 데이즈’(5월 종영)와 ‘신의 선물’(4월 종영)로 안방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tvN ‘갑동이’

 케이블TV는 이미 스릴러 드라마로 대표되는 추리물·수사물이 주축이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갑동이’(tvN)는 수사팀 멤버가 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지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최고 시청률 3.0%(닐슨코리아)로 케이블 동시간대 1위를 기록중이다. ‘갑동이’의 강희준 PD는 “요즘 시청자들은 스릴러물에 대한 기대감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 잘 만들기만 하면 반응이 온다”고 말했다. 영화 채널로 알려진 OCN은 4년 동안 메디컬 범죄 수사극 ‘신의 퀴즈’ 시리즈와 ‘특수사건 전담반 TEN’ ‘뱀파이어 검사’ 등을 통해 스릴러 드라마를 특화시켰다.

 전문가들은 스릴러 드라마가 봇물을 이룬 데는 해외 드라마의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프리즌 브레이크’ ‘로스트’ ‘셜록’ 등 최근 5년간 국내에서 큰 인기였던 해외 드라마는 서스펜스가 재미의 원동력이었다. 지난 1월 KBS2가 방송한 ‘셜록’ 시즌3의 첫 회는 자정을 지난 심야에 편성됐음에도 3.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어디서나 방송콘텐트를 즐길 수 있는 스마트폰 보급으로 해외 드라마의 저변이 확대됐다. 일부 매니어에 국한됐던 해외 드라마 시청자층이 넓어진 것이다. 송종길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는 “시청자가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익숙해지면서 케이블채널부터 스릴러 장르를 시도하기 시작했다”며 “이들의 성공에 위기 의식을 느낀 지상파도 과감히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족 잃은 한 남자가 복수극을 펼치는 KBS2 ‘골든크로스’.

 그간 서스펜스 드라마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한주 간격으로 방영되는 드라마의 구조 탓에 긴장감을 유지한 채 몰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2011년 SBS ‘싸인’이 최고 시청률 25.5%로 크게 성공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덕현 방송평론가는 “김은희 작가가 재벌총수가 돈을 주며 뺨을 때리는 장면 등 국내 시청자가 공감할 만한 한국적 코드를 집어넣으면서 스릴러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KBS ‘빅맨’이나 SBS ‘신의 선물’, ‘쓰리 데이즈’도 기득권층의 비리를 재료로 활용한다.

 서스펜스는 예능에도 번지는 추세다. 살인사건의 현장 속으로 출연자를 몰아넣는 정통 추리물도 등장했다. 지난달 시작한 JTBC ‘크라임 씬’은 회를 거듭할수록 추리 매니어가 몰리며 시청률이 0.5%(2회)에서 1.0%(5회)로 상승했다. ‘크라임 씬’ 윤현준 PD는 “본방송을 챙겨보기보다 다운로드를 통해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보는 시청자가 많아졌다. 그럴 땐 대개 건성건성 보는 게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 보기 때문에 비교적 어려운 컨셉트의 예능도 가능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추리 예능의 효시는 지난 2월 종영된 tvN ‘더 지니어스: 룰 브레이커’다. 게임을 통해 최후의 우승자를 찾는 프로그램으로 멤버들의 두뇌 싸움이 시종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방영 기간 2~3%의 시청률을 보였는데, 20~40대 시청자층에선 케이블채널 프로그램 중 동시간대 1위를 지켰다. 지상파에서도 MBC ‘무한도전’이 지난 2월 탐정 특집을 선보이는 등 종종 추리물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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