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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정치에서 행정으로-입법부와 행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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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라고 이승만 대통령이 혀를 차며 못마땅해했던 국회가 오늘날에는 「행정부의 시녀」냐, 아니냐로 입씨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관계는 대립·대결만의 관계여서도 안되고 추종 관계여서도 안되며, 대립·대결하되 궁극적으로는 조화하는 관계여야 한다고들 한다.
지나간 30년간의 우리 경험은 불행히도 대립·대결만 있고 조화가 없었거나 대립·대결을 잊은 추종만의 관계였으며 양자의 대결은 항상 행정부의 승리로 끝나는 관계였다.

<사라진 대등 관계>
오늘날에 와서는 더우기 국정 감사권의 제거, 연중 회기의 제한 (1백50일 한), 국무 위원출석, 국정 조사권의 제약 등으로 양자의 관계는 제도적인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반면 행정부는 정부 주도하의 경제 성장이란 국가적 목표를 추진함에 따른 권력 집중·기능 집중의 강화 과정을 걸어왔다.
『…행정부의 권력이 의회의 기능을 한낱 「고무 도장」 조직으로 전락시킬 정도로 국회자율성이 저하돼 있는 것이 사실인가』고 우병규 박사 (정치학)는 그의 학위 논문 「한국 입법 체계에 관한 연구」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해답은 『국회의 자율성은 제헌 국회부터 6대 국회까지는 특별히 감소되거나 증대된 것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제3공화국의 중반기인 7, 8대 국회에 들어오면서부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요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통계를 인용하면 3, 4, 5대 국회에서 40%이던 의원 입법의 비율이 8,9대에는 15∼20%로 격감되고, 6대까지 연평균 1백40일이던 국회 개회 일수가 7,8대에서 61일로 떨어졌다.
대 정부 질문에 있어서도 6대까지 연평균 29건이었으나 7, 8대에서는 10건에 불과했다. <별표 참조>
입법부의 약화 현상은 이 같은 통계에서만 나타나는게 아니다.
의원의 권위보다는 행정부 요직이 더 인기를 끌고 의원의 대정부 자세도 낮아진다.
『대통령을 국회에서 맹박하던 시절도 있었죠. 2대 때 부산 피난 시절인데 하루는 이 대통령이 국회에 출석했는데 실무자의 부주의로 마침 대통령 좌석을 마련하지 못했어요. 그때 김모 의원이 대통령한테 신랄한 질문을 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후부터 이 대통령이 직접 국회에서 답변한 일이 없어요』(이충환 신민당 최고위윈).
정치 과잉·정당 정치 미숙 시대인 제헌·2대 국회의 사례가 오늘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 확실하지만 당시의 국회 기백을 이제 찾기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의원의 대 행정부 청탁·저자세 등 자체 요인도 양자의 불균형에 일인이 되고 있다.
48년 제헌 국회에서 이 대통령이 보낸 공문이 문제가 됐다. 『불경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정사 장면, 부사 장기영을 파견코자 한다』는 공문에 국무위원 부서가 없다고 반질을 주장한 의원이 나서 논란이 벌어졌다. 부서 없는 공문은 국회를 경시한다는 주장이었다.
77년 이리역 화약폭 사고가 나자 복구 작업을 위한 긴급 추경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는 이를 관계상위의 심의와 절차에 따른 예결위 구성없이 급히 의결해 일부에서 국회 스스로 법을 위배한다는 비난이 나왔다.
「유엔」 대표 파견 문제나 사고 복구 추경 예산이나 여야 이견이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국회 운영이나 권위를 보는 국회 전체의 눈이 과거에 비해 느슨해진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입법부 약화 현상은 세계적 추세이긴 하다.

<의원 입법 크게 줄어>
심지어 영국같은 의회 중심제의 나라에서도 이젠 「의회 민주주의」란 용어 대신 「수상제 민주주의」 (Prime ministrial democracy)란 말로 표현될 만큼 수상 권한이 강화됐고 강력해진 미국 대통령을 빗대어 「선출된 황제」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김학준 교수·서울대).
선진국에 비해 더 많은 난제와 더 많은 욕구 불만에 대응해야 하는 후진국에 있어서는 행정부 강화와 입법부 약화는 예외 없는 「코스」로 여겨지고 있다.

<전문성 갖춘 국회를>
특히 사회가 다양화·전문화해감에 따라 입법부는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을 확보할 수 없었는데 비해 행정부는 관료 조직 속에 새로운 「엘리트」를 계속 흡수, 대처 능력에 있어서도 현저한 격차를 면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일반적인 추세 속에 우리 나라의 경우 최고집권자가 여당 당수를 겸한 3대 국회부터 국회의 자율성은 더욱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다.
『국회가 점차 권력을 잃게 됐던 것은 행정부의 수반인 집권자가 정당 조직을 통해 국회의원의 정치 생명을 좌우하게 됐기 때문이다』 (배성동·서울대·「해방 30년의 정치사적 의의」).
이처럼 입법부 약화가 보편적·구조적 추세라고 하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일 수밖에 없으며 국회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도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의회의 퇴조는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세계의 일반적 경향 이어서 의원 내각제 정부를 운영하는 나라에서조차 의회가 행정부에 밀려왔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행정부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체제도 더 이상 혼자 뛸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그리하여 다시금 입법부 기능이 중요시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배성동).
한걸음 나아가 배 교수는 『…행정이 합리적인 판단에서 처리되지 않고 정실이 작용하여 부패의 요소가 있고 전문적 실력조차 모자랄 때 그러한 행정은 정치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저해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행정의 무능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행정이 독주할 때 이것을 견제하는 기능은 역시 의회가 맡아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민주주의와 정치 기구의 발전」에서) .
다양화·전문화의 사회일수록 여론 소재 파악이 절실해지고 행정의 합리화가 중시된다고 볼 때 「국민적 논단」으로서의 의회 기능마저 흔들린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끝>

<특별 추재반>
윤호미 문화부 차장
송진혁 정치부 차장
김동수 외신부 차장
권순용 문화부 기자
고흥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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