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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옛집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파리」에서 「발자크」가 살고 있던 『파시의 집』은 옛날에는 낡은 농가였지만 지금은 제16구로 가장 현대적인 고급주택가 속에 들어 앉아있다.
그러나 「발자크」의 고가 주변만은 옛 풍경 그대로 남아 있다. 좁고 꾸부정한 시골길이라 자동차도 다니지 못한다.
물론 「파리」시에서는 헐려고 했었다. 그러나 보존회의 반대를 받아 주저앉았다.
지금은 관광객이 끊일 사이가 없는 국보가 되고 있다. 「파리」시가 좋은 일을 한 셈이다.
최근에 서울 안국동의 윤보선씨 댁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모양이다.
이미 서울시의 지방문화재 민속자료로 지정된 것은 이밖에도 19개 가옥이 있다.
그 중에는 장교동의 한규설 대감댁, 부암동의 윤응렬 대감댁도 들어 있다. 세계적인 「바이얼리니스트」김영욱씨가 자란 운니동 집도 2백년이 넘는 역사로 해서 꼽히고 있다.
모두가 이조시대의 대표적인 한옥들이다. 그러나 이른바 99간 집은 하나도 없다. 이번에 지정된 안국동의 윤씨댁이 그나마 가장 99간 집에 가깝다 한다.
역사는 2백년밖에 안되지만 「워싱턴」엔 유적도 많고 기념물도 많다. 여기 비기면 5백년의 역사를 가진 서울로서는 너무나도 유물이 적다.
광화문 근처에 있던 경선궁, 한말의 풍운을 상징했던 손택 「호텔」, 전동에 있었다는 갑신정변 때의 우정국, 또는 민중전이 갇혀있었던 안국동의 감고당, 이문대신의 개저 태화관 등….
모두가 남아있어도 좋음직한 고 건물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옛 자리를 찾아내기도 어려울 정도가 되어있다.
우리가 자랑하는 종로의 보신각도 따지고 보면 진짜 문화재랄 수는 없다.
옛 문화재감을 복원할 때는 전체의 5할 이상을 새 재료로 쓰게되면 역사적인 가치는 잃게된다.
가령 흙벽을 복원할 때에도 옛 공법 그대로를 따라서 해야 가치가 있게된다. 그러나 옛 재료를 용케 모은다 해도 옛 공법에 익은 공장이며 직공을 구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따진다면 남대문이며 동대문이 과연 몇%나 보물감이 되는지 한번 따져보고 싶어진다.
기왕에 잃은 것은 할 수 없다지만 앞으로라도 조심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단순한 지정만으로 끝나지 않고, 「발자크」의 옛집처럼 둘레환경까지도 보존하는 「파리」 시의 슬기에서 우리는 배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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