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그 경영전략(9)|신발류 국제상사·진양화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형과 아우가 같은 업종에서 회사살림을 따로 차려 성장경쟁을 하고 있다.
신발류업종의 국제상사와 진양화학.
국제의 양정모 회장은 진양의 양규모 사장의 형님(이복)이다.
경쟁기업이라고 하기엔 국제가 진양에 비해 너무 컸다. 또 형제간에 우애를 저버릴 만큼 경쟁만 하는 것도 아니다.

<동업사장들 월례회동>
오히려 형님이 아우에게 사업조언을 하고 집안대사엔 어김없이 모여 일 처리를 논의하곤 한다.
그러나 「비즈니스」는 경우에 따라선 냉혹한 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사실상 형제사이지만 어디까지나 독자노선을 걷고 있고 상호간에 간섭이란 일체 없다.
신발류업계는 국제상사를 필두로 해서 진양·태화(대표 김윤기)·삼화(김영주)의 4강자가 군림해 있고 여기에 동양고무(현승훈)가 뒤쫓고있다.
매달 한번 이들 대 신발류 「메이커」의 사장들은 사장단회의를 열고 업계의 공동관심사를 논의한다.
참석자는 5대 「메이커」의 대표와 수출실적이 1천만 「달러」넘는 풍영화성·보생산업·대양산업의 사장 등 8명.
『신발류업종의 경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4∼5년은 더 지속될까.』
회의벽두 으례 신발류산업의 전도걱정이 화제가 된다.
한 공장에 1만 명 내지 2만 여명의 여공들을 데리고 일하는 신발류업체로는 저임해소 책에 따른 임금의 급격한 상승이 보통문제가 아니다.
솔직이 말해서 지금까지는 저임금을 배경으로 노동집약산업인 신발류 공장이 잘 될 수 있었다.
우연하게도 신발류 5대 「메이커」의 사장들은 모두 2세들. 그중 국제를 제외하면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들이고 공장도 모두 부산시 서면일대에 몰려있다.

<생고무 이용방안에 착안>
거기다가 수지가 안 맞아 내수를 되도록 기피하기 때문에 서로 신경을 곤두세울 이유가 없다.
그래서 다른 업종에서처럼 그렇듯 치열한 경쟁은 없다.
나누어진 세력권 안에서 열심히 성장업종에 참여하려는 탈 고무전략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국제화학(국제상사의 전신)이나 진양화학 모두 창립자는 작고한 선친 양태진씨.
양씨는 미곡상을 해서 번 돈으로 해방직후인 49년 고무신공장을 차렸다.
그것이 오늘의 국제 「그룹」과 진양 「그룹」의 모체가 된 국제화학이다.
당시 양씨는 새로운 업종을 모색하다가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는 인력을 활용하고 원조물자로 들어오는 생고무의 이용방안을 궁리한끝에 고무신공장을 착안한 것이다.
신발공장은 해마다 성장을 거듭했다.
63년엔 범일동 공장이 좁아 사상에 분 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이 진양화학이다.
분 공장은 수출용 신발과 새로 착수한 수지제품생산을 맡게 했고 본 공장에서는 내수용 신발류를 생산하도록 했다.
양씨 생전엔 직접 관장하면서 경영을 챙겼지만 사실상 작은아들(규모)에게 진양화학을 맡기기로 하고 동래군수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냈던 한희석씨에게 부탁, 작은아들의 기업경영 후견을 보게 했다.
양씨는 76년11월 작고하기 훨씬 이전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국제화학은 큰아들, 진양화학은 작은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회사를 나누어 줄 때 직원 수를 똑같이 나누고 작은아들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주었다는 얘기가 지금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 양씨의 숱한 「에피소드」와 함께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형과 아우회사가 갈린 초기엔 같은「바이어」를 두고 김포공항에 출영나가 손님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신발류업계에서 누구도 국제상사와 대등한 경쟁자라고 나서지를 못한다.
국제가 신발류업계에서 오늘날의 패권을 장악하고 20개 방계기업을 거느리게 된 것은 먼저 수출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62년부터 수출하기 시작(한국에선 처음)해서 첫해에 11만9천「달러」를 기록했고 70년 이후는 해마다 수출 신장률이 배가했다.
작년도 실적은 1억4천5백만「달러」. 전체 신발류수출액은 4억3천2백만 「달러」로서 나머지를 ▲진양=5천3백만 「달러 」▲태화=5천7백만「달러」 ▲삼화=5천5백만「달러」 ▲기타업체=1억2천1백만「달러」씩 각각 차지했다. 물량으로는 1억6천4백만 켤레. 그중 60%가 미국시장으로 나갔다.
그러니까 미국사람 중 적어도 3명당 1명은 한국산 신발을 신었다는 계산이다.
해외에서 이름 높은 「던롭」화가 국제상사의 제품(주문생산)이고 유명한 상표의 신발류가 대부분 한국산이라고 보면 틀림없다고 국제의 정인환 수출담당전무는 설명한다.
이제 한국 산 신발은 외국에서도 품질 좋기로 정평 있어 경쟁국인 대만 것 보다 약 배의 값을 받는다.
신발류의 수출단가는 평균 4「달러」, 현지의 판매가격은 그 값의 4배, 대만산은 평균 2 「달러」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신발공장 4개가 한국에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이 신발 대 종국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요즘의 인기 있는 수출신발은 「조깅」(달리기)용으로 미국에서는「코리언·슈즈」라고 불린다(김의신 진양 수출부 차장).
신발류업체들이 성장한 것은 순전히 수출덕분이다.

<한국에 세계최대공장 넷>
내수는 현재의 가격이 74년에 묶인 그대로여서 팔면 팔수록 손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수를 서로 기피하는 바람에 국내시장에서는 경쟁이란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오히려 공급의무 량을 다했는지를 서로 「체크」한다.
76년에 86억 원을 내수 판매한 국제가 올해의 국내판매량을 80억 원으로 잡아 놓은 것이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작년도 국내 신발류의 총판매 량은 7천2백77만 켤레·3백80억 원).
어쨌든 신발류 업체의 최대과제는 성장업종으로의 전환이라는 이른바 「탈 고무」.
그래서 국제는 종합상사를 비롯해서 연합철강 등 중화학 쪽으로 사업을 확대, 종합 「그룹」으로 전신했고 진양은 석유화학과 건설 업계로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모태로서의 신발공장은 계속 모 기업으로 이끌어 갈 것이고 오늘의 부를 가져다준 신발의 은혜를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이제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