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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악마의 숫자 66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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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원래 '묵시록'이란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비(非)인간적 세계의 사건들을 묘사한 기록을 말한다. 여러 묵시록 중 '요한의 묵시록'은 기독교뿐 아니라 인류의 대표적인 계시서(啓示書)로 유명하다.

묵시록은 대부분 종말론과 연관돼 있고 선과 악의 투쟁, 부활하는 신과 영광의 나날들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종말론적 사상과 관련해 유명한 것 중 하나는 배화교(拜火敎)로 불리는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敎)다.

세상을 '아프라 마즈다'(善神)와 '아리만'(惡神)의 투쟁으로 보는 조로아스터교는 선악의 행위에 의한 사후심판(死後審判) 사상을 강조한다.

하지만 종국에는 착한 신인 아프라 마즈다가 승리하고 모든 혼(魂)은 불로써 깨끗이 씻겨져 새로운 정의와 행복, 평화가 가득찬 왕국이 온다고 말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이 같은 종말론 구조는 고대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종말론과 그 구조에 있어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게 학자들의 이야기다.

이런 사상의 바탕에서 자신의 민족이야말로 가장 묵시론적인 민족이라며 소명의식을 강조한 철학자들은 각 종교나 나라에 적지않게 존재했다.

제정 러시아 말기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러시아와 러시아의 운명에 대해 많은 저작을 남겼던 니콜라이 베르쟈예프도 그 중 한명으로 그는 '러시아인이야말로 가장 묵시록적인 민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악의 제국' '악의 축' 등의 단어를 이런 종말론적 사상의 입장에서 보면 그 반대편에 선 자신들은 선의 세계, 종국적 영광의 제국에 들어갈 세력으로 상정하는 세계관을 깔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악마의 숫자 666과, 이라크전에 파병하는 우리 군의 숫자가 일치해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졌다.

국방부의 원래 편성안에 따르면 우리 군은 공병부대 장교 56명, 부사관 1백23명, 일반병 3백87명과 의무부대 장교 38명, 부사관 26명, 일반병 36명 등 총 6백66명을 파견하려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에서 '문명의 충돌' '종교전쟁' 등으로도 불리는 이번 이라크 전쟁에 악마의 숫자로 간주되는 666과 일치하는 숫자를 파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들이 잇따랐다.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우물을 파는 기술병 7명을 추가해 논란을 마무리지었다. 민감한 전쟁에 대한 민감한 파병이니 만큼 국방부는 모든 면에서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