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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선거한다더니 … 식사·향응에 돈봉투까지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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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월호 참사를 의식해 ‘조용한 선거’를 하겠다던 정치권의 약속도 침몰했다. 6·4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3일 여야는 물론 무소속 후보들까지 전국 각지에서 혼탁 선거를 재연했다. 네거티브성 인신 공격은 물론 고소·고발이 난무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돈봉투도 등장했다. 당초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잠긴 민심을 고려한 여야는 네거티브 방식의 선거 운동을 자제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세월호 희생자들의 49재가 열린 이날 여야는 이러한 다짐을 무색하게 했다.

 초박빙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부산에선 새누리당 서병수 후보와 무소속 오거돈 후보 진영이 서로를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다. 오 후보 측은 서 후보가 연설에서 “오 후보가 종북 세력과 손잡았다”고 표현한 것을 문제 삼았고, 서 후보 측은 “오 후보가 근거 없는 부동산 투기 의혹을 폭로했다”며 고소했다.

 서울에서는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의 대변인을 고소했다. 박 후보의 배우자인 강난희 여사가 유병언 일가와 관련됐다는 의혹을 확인 없이 논평으로 옮겼다는 이유다. 박 후보 측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경남 의령군수 선거에서는 무소속 오영호 후보가 새누리당 김채용 후보에 대해 “신장 이식을 중국에서 불법으로 받았다”고 폭로했다가 고소당했다. 의혹이 제기되자 김 후보는 ‘합법적 수술’이라고 반박하며 신장을 기증한 딸과 함께 나와 의료기록을 공개했다.

 선거법 위반 사례도 속출했다.

 전북 고창에서는 청송면 일대를 돌며 돈봉투를 돌린 60대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다. 전주 사전 투표에서는 모 시장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했다는 제보가 접수돼 수사 중이다. 무주 군수 선거에서는 식사와 향응을 제공했다는 선거법 위반 제보가 선관위에 잇따라 접수됐다.

 접전 중인 충북지사 선거에서는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 윤진식 후보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새정치연합 측은 “윤 후보가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에 등록되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를 담은 문자메시지를 유권자 37만 명에게 발송하고 발표했다”며 “이는 당선되더라도 지사직이 상실되는 당선무효형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중앙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이날 국회에서 ‘갑(甲)질’ 의혹 공방을 벌였다.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이 지방선거운동에서 사용한다며 한 자전거업체와 38억5000만원어치의 물품을 주문해놓고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업체가 부도위기에 빠졌다”고 비난했다. 새누리당 윤상현 사무총장은 “을(乙)을 지키겠다던 새정치연합의 모습과 딴판”이라며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새정치연합의 박광온 대변인은 “당과 무관하게 개인 간에 벌어진 일이며 해명의 가치도 없는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아픈 가족사를 끄집어내 난도질하는 등 오히려 예전 선거보다 네거티브의 수위가 훨씬 노골적이고 치졸해졌다”며 “세월호 참사 여파로 실질적인 선거운동 기간이 줄어들고 선거일이 다가오자 각 진영은 의혹만 내던지는 단기(短期)성 네거티브 공세에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에서 출마한 새누리당 소속의 한 기초단체장 후보는 “선거가 코앞에 닥치며 초초해질수록 내가 안 해도 어차피 저쪽이 할 테니 차라리 선제 공격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게 낫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야권의 기초 무공천 논란이 네거티브 선거를 불렀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새정치연합의 관계자는 “기초 무공천 논란으로 공천이 늦어지면서 예년에 비해 정책이나 공약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지역에 후보를 알릴 시간도 부족했다”며 “중앙당의 미숙한 리더십이 지역 후보들로 하여금 네거티브에 매달리게 만든 측면이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KBS ‘지방선거 출구조사 게재’ 소동=이날 한때 KBS 홈페이지에 ‘출구조사 결과-방송 3사 공동 조사’라고 돼 있는 내용이 올라와 여야가 날 선 비판을 하고 나섰다. 문제의 페이지를 누르면 광역단체장 후보별 득표율 수치와 당선자 명단으로 연결됐다. 서울·충북·충남·전북·전남은 새정치연합 후보가, 부산·대구·대전·세종·울산 등은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자로 돼 있었다. KBS는 “사전투표 출구조사를 한 적이 없다. 어찌된 일인지 경위를 파악해 보겠다”며 10여 분 만에 사이트를 닫았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노웅래 중앙당 선대위 운영지원본부장은 국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명백한 관권선거이자 불법 공작”이라며 “KBS가 여권표 결집을 통한 막판 뒤집기 공작을 꾀하는 결정적 증거”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이에 대해 “공개된 내용은 오히려 새누리당에 불리한 내용이었다”며 정치공작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민을 호도해 유감이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KBS를 항의 방문했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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