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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피아' 영입 뒤 수백억원대 부품 잇따라 수의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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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호남고속철도에 국산 ‘콘크리트궤도용 고속 분기기(하얀 원 안)’를 적용한 사례. [사진 철도시설공단]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수서발 KTX(수도권 고속철도)의 레일 장치 공급을 경쟁 입찰 없이 삼표이앤씨와 수의계약 하려 했던 것으로 2일 본지 취재 결과 드러났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일 철도공단 등에 로비하기 위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삼표그룹 J회장과 전무인 아들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철도공단의 발주 담당 직원 A씨는 지난달 30일 본지 기자에게 “2016년 개통하는 수서발 KTX 건설 사업(수서역~평택역, 총 길이 61.4㎞)에서 열차 진행 방향과 레일을 바꿔주는 장치인 ‘고속 분기기’(열차 선로 전환기) 납품 업체로 삼표이앤씨를 선정해 2일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속 분기기 38개를 납품하는 것으로 총 사업비는 약 200억원에 이른다. 국가계약법상 5000만원을 초과하는 물품은 경쟁 입찰에 부쳐야 한다. 삼표이앤씨 외에 독일 B사가 입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철도공단 측은 입찰 공고도 없이 삼표이앤씨와 수의계약을 추진했다. 수의계약은 업체가 한 곳이거나 신기술인 경우만 가능하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B사는 기존 설치한 고속분기기에 문제가 있어 공개 입찰 없이 삼표이앤씨를 선정하기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본지가 2일 다시 취재에 착수하자 공단 측은 “중앙일보 취재 이후 수의계약을 재고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있어 최종 결재가 나지 않았다. 계약 체결을 잠정적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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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검찰은 철도공단 측이 호남고속철 을 포함해 각종 철도 사업에서 삼표이앤씨에 특혜를 준 것으로 보고 납품 과정을 확인 중이다. 또 삼표이앤씨가 철도공단과 가까운 ‘철피아(철도 마피아)’ 인사들을 앞세워 전방위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검찰은 철피아를 ‘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의 1호 타깃으로 삼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삼표이앤씨는 2012년 영입한 신모(현 부회장) 전 철도청장을 비롯한 임원 대다수가 철도청·철도시설공단·서울메트로 등 철도 관련 공기업 출신이다.

 삼표이앤씨는 지난해 호남고속철도의 고속 분기기 사업(283억원 규모)도 수의계약으로 체결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과정에서 철도공단 측에 로비를 벌인 정황을 포착하고 지난달 28일 삼표이앤씨를 압수수색했다.

 삼표이앤씨가 철도공단으로부터 잇따른 특혜를 받은 배경에는 2012년 9월 말 삼표그룹 회장이 김광재 전 철도공단 이사장을 찾아가 성사시킨 ‘빅딜’이 있었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당시 삼표에 영입된 지 얼마 안 된 신 전 철도청장이 J회장과 함께 갔다. 삼표의 전 관계자는 “김 이사장과 삼표그룹 회장이 만나 공단에서 삼표의 고속 분기기 사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삼표가 철도공단의 ‘레일패드’ 문제를 해결해주기로 합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레일패드 문제는 당시 감사원이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P사의 레일패드를 말한다. 삼표이앤씨가 시공한 경부고속철도 2단계(대구~부산 간, 2010년 완공)에 쓰였다. 레일패드는 열차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레일과 침목 사이에 끼우는 고무판으로 안전에 중요한 부품이다.

 철도공단은 시공사인 삼표이앤씨에 네 차례에 걸쳐 “레일패드를 전량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삼표 실무진들은 “감사원의 기준이 국제적으로 근거가 없고 멀쩡한 레일패드를 재시공할 수는 없다”며 반발했다. 당시 삼표 관계자는 “P사의 경쟁 업체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려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레일패드를 납품할 수 있는 곳은 P사와 에이브이티(AVT)사 두 곳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철도공단은 지난해 호남고속철 사업에서 P사를 배제하고 AVT사의 부품만 쓰도록 했다.

 철도공단은 2012년 9월 말 삼표 측에 레일패드 교체를 요구하는 대신 고속 분기기 사업에선 삼표이앤씨를 밀어주기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확보한 공단 내부 문건에는 ‘삼표는 자체 개발한 고속 분기기에 문제가 없으므로 (도입) 추진하겠다’고 돼 있다. 최모 공단 궤도처장이 김 이사장에게 보고한 문건이다. 당시 삼표이앤씨는 자체 개발한 고속 분기기를 일반철도 외에 고속철도 구간에는 현장 적용조차 해보지 못한 상태였다. 김 이사장도 보고서에 ‘사전 검증 없이 (현장에 설치해) 300㎞/h를 운행해도 되나요’라고 자필로 코멘트를 달아 내려보냈다.

 이후 삼표이앤씨는 20억원을 들여 레일패드를 새 것으로 주문해 갈아 끼웠고, 철도공단의 각종 사업을 무난하게 수주했다. 김 전 이사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J 회장과 신 전 청장을 만난 건 문제가 된 P사의 부품을 바로잡기 위해서였고 특혜를 준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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