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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부실 논의 밭 전환 적절 묘목포의 무리한 전환 재고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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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이번 가뭄을 계기로 한해 상습답을 밭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우선 한해상습지로 지목된 5만5천6백 정보 중 용수개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1천2백 정보를 금년과 내년에 걸쳐 밭으로 전환하고 7월1일부터 6개월간 다시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전 전환 대상지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가 천수답의 전 전환을 서두르는 것은 한마디로 수원이 없는 곳에서 논농사를 짓는 것보다는 밭농사나 과수원 혹은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논을 밭으로 바꾼다는 것은 직접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는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인지 모른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네 식생활 풍습이고 보면 쌀 농사를 폐한다는 것은 농사의 바탕을 잃는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소득 증가에 따른 식생활「패턴」의 변화, 작목별 농산물 가격 동향 등을 감안할 때 벼농사에만 연연할 시대는 지났다고 보아야할 것 같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의 농업소득 분석 결과를 보면 쌀·보리 등 식량작물을 경작하여 얻은 소득은 농가당 평균 88만6천4백원으로 76년에 비해 5.3%가 늘어난데 비해 야채·과실 등 경제작물의 재배에서 얻은 소득은 37%, 축잠에 의한 소득은 41.6%가 늘었다.
이것은 식량작물의 생산과 가격상승이 한 개에 달한 반면 소득증가로 신선한 채소·과실·고기 등 고급식품 등 대한소비가 늘고 더우기 계절을 타지 않는 수요증가로 높은 값을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땅에 은행이나 살구·호두 등 유실수를 심는 경우에도 쌀보다 배 이상, 4배까지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조금만 가물어도 가슴을 죄어야하는 천수답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정부의 전 전환사업 추진에 공감할 수 있다.
물론 전 전환사업에 문젯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사업비가 많이 든다.
천수답에 용수를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은 정보 당 평균 1백1만8천원인데 비해 논을 밭이나 과수원으로 만드는데는 지형 등 여건에 따라 그 2∼3배의 비용이 드는 곳도 있다.
뿐만 아니라 과수원을 조성하는 경우 당장 소득이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과실을 딸 때까지 생계비와 영농비를 달리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젯점을 인식, 한해상습지 5만5천6백 정보 가운데 대부분은 관정·집수암거 등 용수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용수시설이 불가능하거나 입지조건상 밭 전환이 유리한 대도시 근교 고지대 등에 대해서만 이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 과수원 조성에 대해서는 정보 당 개간비 54만원, 식재비 1백49만원, 3년간의 생계비 54만원 등 모두 2백57만원을 국고에서 보조하고 관리비 40만원을 융자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한가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이처럼 많은 부담을 감수하면서 전 전환 사업을 벌이는 한편으로는 이미 밭으로 만들어 묘목을 심는 등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토지를 원상으로 돌리도록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농지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관상수 묘목을 심은 전국 1천8백 정보의 농지에 대해 내년 1월까지 원상으로 회복시키도록 하고있다.
묘목이 심어진 농지를 원상회복 시키라는 것은 이를 옮겨 심어야 할 산지의 개발이 엄격히 규제되고 있는 현 실정에서는 모두 뽑아버리라는 말과 같다.
그래서 3천만 그루 이상의 묘목이 뽑혀야 할 처지에 있다. 이로 인해 입을 농민의 손실도 문제지만 늘어나는 묘목 수요를 어떻게 충당하려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이번 가뭄으로 호남지방에서는 산에 심은 묘목의 80%이상이 고사하는 등 전국적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보고 있다.
천수답의 전 전환과 논·밭에 심은 묘목을 뽑아버리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할지 모르나 전 전환의 취지가 특용작물의 재배로 농가소득을 높이는데 있다면 이 두 가지 정책은 일관성을 결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논이나 밭에 묘목을 심은 농민들은 그쪽이 식량작물을 재배하는 것보다 소득이 높다고 판단한 사람들이다. 또 정부가 이를 권장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논·밭에 묘목을 심으라고 했다가 다시 이를 파내라고 하고, 이번에는 다시 논을 밭으로 만들어 특용작물을 심으라고 하는 셈이다. 국민들이 당혹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토지의 효율적 이용과 소득의 극대화에 가장 민감한 것은 당사자인 농민들 자신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행정력을 발동하여 이래라 저래라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손실을 입힌다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앞서도 강조했듯이 이번 정부의 전 전환사업은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 만큼 정책의 일관성과 목적을 살리려면 이 같은 정책에 상충하는 조치는 마땅히 철폐되어야 할 것이다. 【신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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