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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학의 존재의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방대학에 대한 문제가 각계에서 최근 심각하게 논의의 대상으로 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지난 30여년간 쌓여만 왔던 서울중심의 문화에 대한 반성의 제기라 할 수 있겠으며, 더 깊게는 우리가 현재 대학이라는 기관을 어떻게 갖고 있는가에 대한 뼈아픈 현실 고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지방대학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모든 길은 서울에 있다』는 중앙집권적 생각이 이제 해방 이후의 정치현실이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실상 지방대학을 포함하여 지방의 모든 문물제도는 서울과의 엄청난 격차 속에서 차라리 소외당하고 있었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대학의 경우 교수고 학생이고 서울을 향한 상대적 열세 속에서 허덕여야 했다.
왜 대학이 꼭 정치·경제의 중심지와 존립을 같이해야 하는가 하는 반문을 갖기에 앞서 우리의 지방대학들이 이런 우리 현실의 수난자들이었다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근자에 이르러 제기되고 있는 이른바『지방대학의 육성책』은 과연 어떤 내용의 것인가. 그것은 그 발상의 시발점이 제1차 적으로 수도권인구 분산책의 일환으로 출발했다는 점부터가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은 벌써 그 자체가 서울 중심적 사고의 소산일 뿐, 과연 대학의 발전, 대학육성의 길인가를 의심케 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동안 지속된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어떤 정치적 의도가 뒤에 깔린 조치라는 의심은 털어 버릴 수 없는 것이었고 또 학생증원으로 대학육성을 우선 삼는다는 인상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대학이 학문의 연구와 문화의 창조·전승기관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요청을 인식하면서도 학생정원만 먼저 늘려놓고 교수요원이나 시설의 확보문제 등 무엇보다 중요한 대학자체의 연구·교육적 기능이 제2차적인 것으로 미루어진 것 등은「지방대학육성책」의 가장 핵심적인 결합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더우기 때마침 수출「붐」이다 경제발전이다 인력난이다 하여 당장 필요한 대졸인력의 증원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던 점 등이 바로 우리의 줄달음경제의 약점을 더욱 키워간다는 걱정까지 줄뿐이었다.
벌써 4, 5년째 계속된 육성책이 소기의 성과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문젯점을 제기한 것은 바로 이런 바탕에서였음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서울에 더 이상 대학생을 늘리지 않겠다는, 어떻게 보면 외고집 같은 발상으로는 지방대학육성책이 갖는 거창한 목표에 도저히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에서 대학생을 쫓는다는 의미보다는 지방의 학생들이 서울로 올 필요가 없게끔 그 여건을 과감히 세우는 것이 오히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람있는「비전」을 주게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현재 지방대학이 안고있는 어려움은 한마디로 대학다운 구실, 대학다운 모습을 어떻게 빨리 갖추는가에 모아진다. 다시 말해 지방대학이라 해도 우선 대학이 가져야 하는 교육의 장으로서의 인적·물적 시설과 그 분위기를 갖추도록 도와주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의「서울」집권적 상황을 깨는 데에서 출발돼야겠지만 한편으로 여기에서부터 오랜 고질을 헤쳐나가는 실마리를 찾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서울중심에 맞서는 새로운 상대적 문화를 형성하고 그것이 중앙집권적, 그리고 획일적 우리상황을 깨뜨리는 길로 이어져야 한다.
지방문화형성의 모체요, 그 중심지로서의 역할측면에서 지방대학의 존재의의를 특히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의미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담을 터놓고 그 유대를 밑바닥에서부터 깊게 뻗어야함은 애초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역사적 이유다.
특히 거의 미개척상태라는 우리의 지방문화를 놓고 볼 때 지방대학의 존재가 절실하게 요구됨은 선진 외국의 비가 아니다. 「대학」이라는 풍토의 정지작업에서 이것이 바닥을 이루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에 쏟아지는 지방대학 육성문제에의 초점은 바로 어떻게 이 작업을 전개해야하는가에 모아진다. 오늘의 시점에서 먼 미래를 보는 것이 대학의 독특한 구실이기 때문에 더욱 먼 눈의 정책, 장기적인 계획이 요구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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