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기억할 만한 지나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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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스스로 생각해도 지나친 것 같다.” 전관예우 논란이 한창일 때 당사자가 한 고백이다. ‘힘들었던 6일’을 보낸 후 그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의 ‘국어 본능’은 오늘도 묻는다. 평범, 모범, 비범 3형제 중 누가 가장 행복할까.

6월이다. 6월은 25년 전에도 있었다. KAIST에 다니는 두 젊은이가 1989년 6월 ‘퀴즈 아카데미’에 출연신청을 했다. 필기시험과 면접 후 출연날짜가 결정되면 먼저 팀 이름을 정한다. 과학영재들은 ‘질투는 나의 힘’을 골랐다. 기형도의 시 제목이다. 특이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녹화 당일 갑자기 팀 이름을 ‘기억할 만한 지나침’으로 바꾸겠단다. 역시 같은 시인의 작품이다(어지간히 기형도 시인을 좋아했나 보다). 명패 수정 등 번거로움은 있었으나 요구가 강력해서 바꿔주었다.

녹화가 시작됐다. 나는 왜 이들이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곧 알게 되었다. 정말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었다. (실제 기형도의 시는 관공서를 ‘지나쳐감’이라는 뜻이지만) 문제가 시작되자마자 벨을 누르기 시작하는데 지나치게 성급하다 보니 맞은 것 반, 틀린 것 반이었다. 결국 탈락했다. 상대 팀은 몇 번 눌러보지도 못하고 어부지리로 승리(?)했다.

두 이야기의 연결고리는 뭘까. 사퇴한 후보자 별명은 ‘너무 잘 드는 칼’이다. 잘 드는 칼은 조심해야 한다. 너무 잘 드는 칼은 위험하다. ‘국어 본능’으로 볼 때 요즘 사람들은 ‘너무’라는 말을 ‘너무’ 쓴다. 오죽하면 방송인터뷰 도중 “너무 좋아요”라는 말이 나오면 자막으로는 “정말 좋아요”라고 표기하는 게 관행이 됐을까. ‘너무’는 ‘넘다’가 뿌리다. 도를 넘으면 사람들은 고개를 돌린다. 도를 넘은 사람들은 결국 고개를 숙이게 된다.

‘너무’가 매력적인 경우도 간혹 있다. ‘너무’ 도전적인 사람.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시 ‘기억할 만한 지나침’ 중에서) 외로운 사람들을 ‘일촌’으로 맺어준 싸이월드 창업자 형용준씨. 젊은이 대상 강연에서 그가 말했다. “살기 위해 사는 것만큼 비참한 삶은 없다.” 네 번의 학사경고, 병역특례를 받았음에도 28세에 자원입대, 그리고 여섯 번의 창업(다섯 번의 실패?). 그러나 당당하다. “실패를 통해 역량을 쌓을 수 있었다.” 승승장구가 아닌 무한도전. 현재는 미쉬팟 대표인 그 사람이 바로 25년 전 예선 탈락했던 그 학생 형용준이다. 25년 만에 만나면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마지막 행을 읽어줄 참이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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