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양란과 작가의 현실의식|소재영 교수(숭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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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조선사회 내부의 계층적 변혁을 가져왔다. 외적 침략이라는 자극은 지배층의 자생과 서민의식의 앙양을 가져왔고 강렬한 주체성과 민족의식이 형성되었다. 「임진록」·「박씨전」을 비롯한 40여 편의 군담소설은 바로 이러한 체험과 분노의 기록이며 「몽유록」등은 자생의 기록문학이다.
이 같은 의식은 지배층에 억눌려 지내던 무력한 민중들의 것이었고, 이러한 시대소설의 작자는 이런 의식을 전달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 사 계급이나 애국지사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임병양란 시대 작가들은 현실적 좌절을 딛고 문학의 광대한 지평에다 민중의 꿈을 심을 줄 알았다.
김시습에서부터 시작된 조선 소설사의 대종을 이루는 허균·김만중·박지원까지를 연결해 보면, 우선 구체적 의식화와 민중에의 접근을 통하여 작가적 기질을 성장시켜 가고있는 공통적 모습을 본다.
허균은 『성수시화』에서 김시습의 강렬한 현실적 비판정신을 높이 사고 있으며, 김만중도 『서포만필』에서 언어의 자주성을 주장하고 있다.
『임진록』을 보면 패배의식을 설욕하려는 민중들의 소망과 통쾌한 보복을 하고 싶어하는 주체적 소망이 역연하게 나타난다.
효종 조에 이르면 이러한 민중의 분노가 북벌 논의 물결을 타고 거센 파도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이러한 열기가 작가의 힘을 빌어 독자와의 사이에 공감대를 넓혀간다. 분노와 자성의 양면성을 통해 민중 편에 서서 사명감을 갖고 주체의식을 독자에게 전해준 이 시대 작가정신은 높게 평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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