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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왕의 반란 … 개미와 재미의 힘으로 IT 틀 바꾸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리누스 토르발스는 세계 개발자들로부터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 창업자와 함께 ‘살아있는 3대 전설’로 불린다. 지난해 11월 ‘코리아 리눅스 포럼 2013’ 방한 당시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국내외 개발자들과 함께한 토르발스(앞줄 오른쪽에서 셋째). [사진 구글코리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를 세계 최고 부자로 만든 것은 컴퓨터 운영체제(OS)다. OS란 정보기술(IT) 기기를 총괄 제어하는 기본 프로그램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만들기도 어렵다. MS는 1980년대엔 도스(DOS), 90년대 이후에는 ‘윈도(Window)’라는 OS로 디지털 세상을 평정했다. 이어 뛰어난 성능과 강력한 저작권 정책으로 사용자는 물론 개발자들조차 그 세계를 벗어나기 힘들게 만들었다.

기술 공개해 전 세계서 협업·공유
MS의 철옹성에 미세한 균열이 나타난 건 2000년 전후다. ‘리눅스(Linux)’라는 신생 OS가 시장을 조금씩 파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데 그 성격이 독특했다. 핵심 기술은 인터넷에 버젓이 공개되었다. 세계 누구나 이를 이용해 다양한 배포판을 만들 수 있었다. 개발자들은 아무 대가 없이 이를 손보고 공유했다. MS는 이런 방식을 아마추어리즘, 심지어 “새로운 형태의 공산주의”라며 비하하고 힐난했다. 언론의 시각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십수 년, 리눅스는 어느새 MS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됐다. PC시장에서의 점유율은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스마트폰, 태블릿PC,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신기술 영역에선 MS를 크게 앞선다. 미국 시장조사기업 IDC에 따르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리눅스 기반 OS인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은 79%에 이른다. 수퍼컴퓨터의 94%, 서버의 85%, 세계 주요 증권시장 플랫폼의 80%가 리눅스 기반 OS를 쓴다(골드먼삭스).

리눅스를 쓰지 않는 웹사이트와 기업은 사실상 없다. MS마저 관련 기술 개발과 활용에 열심이다. 리눅스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공조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를 개발자 한 명이 만들었다면 6만 년간 80억 달러가 들었으리라는 통계도 있다. 리눅스가 기술 공개를 통한 협업과 공유라는 ‘오픈 소스 운동’의 선구자이자 상징인 연유다. 무엇보다 리눅스는 매우 저렴하다. 덕분에 지구촌 인터넷 환경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혁신의 뿌리에는 빌 게이츠 못지않은 천재 개발자, 하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기로 한 남자, 리누스 토르발스(Linus Torvalds·45)가 있다.

토르발스는 리눅스의 창시자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때부터 컴퓨터에 푹 빠졌다. 91년 헬싱키대 전산학과 대학원생이던 그는 자기도 모르는 새 엄청난 일을 해내고 만다. 당시 그는 유닉스(Unix) OS의 교육용 버전인 미닉스로 프로그래밍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그 성능이 도무지 맘에 차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싼 유닉스 OS를 살 수도 없는지라 직접 개발해 버리기로 했다. 그해 8월 26일 그가 개발자들이 주로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 ‘뉴스그룹’에 “취미로 무료 OS를 만들고 있다”는 글을 올렸을 때만 해도 이를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9월 17일 그가 실제 개발한 소프트웨어(SW)를 공개하자 세계 각지로부터 뜨거운 반응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오픈 소스 SW 운동의 주창자 리처드 스톨먼이었다. 스톨먼은 MIT 인공지능연구소의 간판 스타였다. 84년 그는 학교를 뛰쳐나와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을 설립한다. 이어 유닉스와 호환 가능한 무료 OS(일명 ‘GNU’) 개발에 뛰어든다. 대다수 관련 기술 개발에 성공했으나 ‘커널(kernel)’만은 완성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커널은 자동차로 치면 엔진에 해당하는 것으로, OS의 성능과 안정성을 결정한다. 한데 토르발스가 개발한 것이 바로 그 커널이었던 것이다.

토르발스는 이 기술을 독점해 얼마든지 큰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평소 신념에 따라 GNU와 통합하기로 한다. 더하여 ‘자유소프트웨어저작권(GPL)’ 대열에 합류한다. 저작권은 개발자에게 귀속되나 SW의 복사, 수정과 변경, 배포의 자유를 제3자에게 허용하는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의한, 만인을 위한’ 프로그램의 탄생이었다.

리누스 토르발스는 종종 직설적 화법으로 구설에 오르곤 한다. 2012년 6월 핀란드에서 열린 강연회 중 리눅스를 이용해 가장 큰 수익을 올리면서도 서비스지원은 하지 않는 세계 최대 그래픽칩 업체 엔비디아를 언급하며 ‘손가락 욕’을 하는 모습. [사진 유튜브]

리눅스 발전시킨 배포판 200여 종 달해
이후 리눅스는 공유와 협업 정신에 입각한 세계 개발자들의 헌신 속에 성장을 거듭했다. 각 기업과 커뮤니티, 프로젝트 그룹들이 내놓은 배포판만 해도 200종이 넘는다. 구글은 리눅스 커널을 기반으로 광대한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삼성과 인텔이 함께 개발한 타이젠폰, PC와 모바일 환경 통합을 지향하는 우분투폰, 웹브라우저 기반 OS를 탑재한 파이어폭스폰 등도 모두 리눅스의 자장 안에 있다. 토르발스는 2012년 전자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리눅스의 최대 강점은 유연성”이라고 말했다. “각자 목적에 맞게 발전시켜 나가기 용이한 만큼 모든 실험적 제품에 최우선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 수백만 ‘개미군단’ 개발자가 관여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해도 빠른 수정이 가능하며 업그레이드도 수시로 이루어진다.

현재 토르발스는 리눅스재단의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일한다. 리눅스에 대한 모든 권한은 재단에 양도했다. 몇몇 거대 IT 기업의 거듭된 스카우트 제안도 뿌리쳤다. 대학원 졸업 뒤인 97년부터 6년간은 일부러 리눅스와 관계 없는 회사에 근무하기도 했다. 리눅스 커뮤니티 안에서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가 이토록 남다른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토르발스의 대답은 “그냥 재미로(Just for fun)”이다. 이는 그가 2001년 출간한 책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책에서 삶의 전개 방식엔 생존, 사회화, 오락의 세 단계가 있는데 이 중 사람을 가장 강렬하게 추동하는 것은 오락, 즉 ‘즐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신 또한 개발자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그러니까 기술적 문제를 해결했을 때 목덜미 털이 쭈뼛 설 정도의 짜릿한 기분이 너무 좋아 이 일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실제 그는 스스로를 ‘괴짜(geek, 특정 분야에 강한 지적 열정을 가진 사람)’라 칭하길 즐긴다. 리눅스 개발 역시 일종의 취미활동이었을 뿐, 장기적이며 거대한 계획보다는 당장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사는 것이 자기 방식이라는 것이다.

토르발스는 현재 아내와 세 딸, 뱀이며 고양이, 강아지, 골드피시 같은 애완동물들과 함께 미국 오리건주 한 호숫가에 산다. 2012년 3월 인터뷰 차 그의 집을 찾은 미국 IT전문매체 ‘와이어드’의 기자는 토르발스가 타고 다니는 메르세데스 SLK 컨버터블의 번호판 사진을 크게 찍어 웹사이트에 올렸다. 클로즈업된 번호판에는 이런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미스터 리눅스(MR. LINUX)’ ‘괴짜들의 왕(KING OF GEEKS)’ ‘세 딸의 아빠(DAD OF 3)’.

그가 세계 최고 부자 빌 게이츠보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naree@dcam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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