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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6월의 주제 - '삶은 멈추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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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6월 주제는 ‘삶은 멈추지 않는다’입니다. 아내의 죽음, 불치병 등 갑자기 들이닥친 절망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이들의 이야기를 골랐습니다. 세월호의 아픔을 위로하는 우리 이웃들의 목소리 입니다.


아내 먼저 보낸 영국 작가 "죽음과 사랑은 하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다산책방
208쪽, 1만2800원?

2008년 10월20일, 삶의 심장이 멈췄다. 장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작가 줄리언 반스의 아내 팻 캐바나가 세상을 떠난 그날, 그의 삶은 얼어붙었다. 빙산의 한가운데 갇힌 듯, 침묵하던 그가 5년 만에 내놓은 이 책은 ‘종이로 지은 타지마할’이라는 영국 일간지 옵서버의 서평처럼 떠난 아내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30년을 같이한 아내의 죽음은 성격 급한 불청객이었다. 길에서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져 뇌종양 판정을 받은 지 37일 만에 아내는 눈을 감았다.

 누구보다도 금슬이 좋았던 부부였던 그는 아내를 잃고 어쩔 줄 몰라 쩔쩔맨다. 아내를 구할 수 없었던 자신의 무기력함에 좌절하고, 사별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 서운하고, 애써 아내를 잊으려 하는 지인들의 태도에 분노한다. 상실의 슬픔을 위로할 종교에 기댈 수도 없는(그는 골수 무신론자다) 자신의 처지는 처량 맞다.

사별의 아픔을 에세이로 쓴 줄리언 반스(아래)와 뇌종양으로 죽은 아내 팻 캐바나. [사진 다산책방]

 아내라는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그의 삶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치닫는다. ‘비탄은 시간을 바꾼다. 시간의 길이를, 시간의 결을, 시간의 기능을 바꿔놓는다. 오늘 하루가 내일과 전혀 다르지 않게 돼버린 마당에, 굳이 각각의 날들에 별도의 이름을 붙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삶의 동력이자 나침반 같던 짝의 죽음은 그의 삶을 갈짓자로 만들었지만, 그는 아내의 죽음을 직시한다. ‘나는 아내를 다시 보게 되리라고 믿지 않는다. 보고, 듣고, 만지고, 안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웃을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 자살의 유혹도 단호히 떨쳐낸다. ‘내가 자살하면 자신만이 아니라 아내까지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아내를 ‘과거적 현재형’으로 만든다. ‘딱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온전히 과거에도 속하지 않고, 그사이 어딘가의 시제에 속하는’ 아내와 함께 살아간다. 아내를 찾으러 저승으로 내려간 오르페우스처럼 그는 혼자만의 심연 속에서 아내에게 말을 걸고, 아내를 꿈에서 만난다.

 줄리언 반스가 자신과 아내에 관해 쓴 유일무이한 ‘회고록’이자 개인적 내면을 열어 보인 에세이를 기대하고 책장을 펼친 독자는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다. ‘삶의 층위(Levels of Life)’라는 원제처럼 르포르타주인 1부(비상의 죄)와 소설인 2부(평지에서), 작가의 에세이인 3부(깊이의 상실)까지 성격과 장르가 다른 세 가지 글을 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낯섦과 어색함도 잠시, ‘하늘-땅-지하’로 이어지는 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현실과 허구를 구별할 수 없는, 때로는 오로지 꿈만 같은, 그리고 이별의 순간에는 현실적인 아픔만이 존재하는 사랑의 층위와 속성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스의 글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죽음은 사랑의 끝이 아니며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이 노래가 문득 떠올랐다. ‘떠나고 알았다/만남도 이별도 같이 자라는 걸/사랑이 말한다/가슴이 멈춰버려야/비로소 사랑도 멈춰 선다고’(이은미의 ‘사랑이 무섭다’ 중)

하현옥 기자

줄리언 반스가 ‘내 삶의 심장’이라고 지칭한 그의 아내 팻 캐바나(1940~2008)는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 에이전트로 ‘카리스마 넘치는 작가들의 대변인’이었다.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로버트 해리스와 영국 추리소설 여왕 루스 렌델 등이 그의 주요 고객이었다. 탁월한 문학적 감식안을 발휘해 수많은 문인을 발굴하고 후원한 그의 영향력을 보여주듯 2008년 뇌종양으로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영국의 주요 매체에 ‘런던 문단의 별이 지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태어난 그는 케이프타운대를 졸업한 뒤 1964년 영국으로 건너와 월터 톰슨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다 66년 문학 에이전트의 길에 접어들었다. 줄리언 반스와는 79년 결혼했다. 반스가 범죄소설을 쓰며 사용했던 ‘댄 캐바나’는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루게릭병 걸린 미국 기자 "오늘 하루도 기쁘게"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수전 스펜서-웬델· 브렛위터지음
정연희 옮김, 문학동네 483쪽, 1만4800원

불치병에 걸렸다. 모든 게 예전과 똑같은데 내 삶만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장송곡이 귓가에서 계속 울려퍼지는데 루게릭병(ALS)에 걸린 여자는 매순간 “살아 있는 것이 정말 기뻤다”고 했다. 병의 특성상 몸은 서서히 죽어가고 마음은 그 상실을 일일이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도 책의 주인공이자, 공동저자인 수전 스펜서-웬델은 점점 굳어지는 손가락으로 아이폰을 톡톡 두드리며 기쁘게 살아낸 일년을 썼다.

 수전은 미국 ‘팜비치 포스트’ 법조 기자로 20년을 일했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지난 삶을 돌아보며 “자동조정장치와 같은 삶이었다”고 했다. 일주일에 마흔 시간을 지역 형사 법원을 드나들며 사건 기사를 썼다. 또 다른 마흔 시간은 자폐증이 있는 막내 아들을 포함한 세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했다.

 2009년 여름 밤이었다. 수전은 왼손이 유독 앙상하고 파리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2년 뒤 ALS 확정 판결을 받는다. ALS는 근육에 붙은 신경이 죽으면서 근육까지 죽게 하는 신경근 질환이다. 마흔네 살의 세 아이의 엄마는 그 순간 새로운 출발대에 선다.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비극을 맞닥뜨리고도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자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맨다.

 수전은 이후 일 년간 일곱 번의 여행을 떠났다. 절친인 친구와 꿈에 그리던 오로라를 보기 위해 캐나다로 가고, 남편과 함께 신혼시절을 보냈던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여행한다. 입양아인 그는 진짜 엄마를 찾아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자신을 반기는 그리스 친척들과 조우한다. 딸과 뉴욕으로 여행갈 무렵, 딸이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기 위해 유명 웨딩숍에 들를 거라는 그의 행보가 일일이 기사화 될 정도로 그의 여행기와 생활기는 유명세를 탄다.

 책에는 슬픔보다 기쁨의 감정이 더 많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억지스러운 자기 암시가 아니다. 수전은 죽는 방식으로 기쁘게 사는 삶을 택했다. 처음에는 자살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죽는 방식이 내 가족이 즐겁게 살아가는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강해지기로 결심한다.

 여행을 다녀올수록 저자의 몸은 약해진다. ALS 환자에게 한번 망가진 근육은 돌아오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다. “여행은 내 마음을 강하게 만들었다. 내 심장을. 공평하지 않은가”라고 수전은 말했다.

 누구에게든 삶은 대단한 여정이다. 그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저자의 특급 레시피를 빌려와 본다. “삶을 오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열심히 노력하되 그대로 받아들여라. 세상을 억지로 당신의 꿈에 맞추지 마라. 현실이 더 낫다.”

한은화 기자

프랑스 철학자의 걷기 예찬 "자유를 다시 얻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이재형 옮김, 책세상
320쪽, 1만4000원

록밴드 ‘들국화’가 지난해 발표한 ‘걷고 걷고’란 노래가 있다.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새벽 그대 떠난 길 지나 아침은 다시 밝아오겠지. 푸르른 새벽 길 꽃이 피고 또 지고. 산 위로 돌멩이길 지나 아픔은 다시 잊혀지겠지.’ 전인권의 쓸쓸한 목소리가 뚜벅뚜벅 귓전으로 걸어오는 이 노래는 녹록치는 않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우리네 인생에 대한 은유다. ‘달리기’가 목표를 향한 뜀박질이고, ‘날기’가 초월을 위한 날갯짓이라면, 삶 그 자체는 자연히 흘러가는 ‘걷기’에 더 가깝다.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 직업인 수많은 학자들이 걷기를 예찬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터다.

 여기 한명의 철학자를 더 보태자. 프레데리크 그로. 미셸 푸코를 연구하는 프랑스의 철학자다. 그는 ‘걷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다’로 시작해 ‘나는 파리에서 이따금 이렇게 걸어본 적이 있다’로 이 책을 끝낸다. 걷기에 대한 사유답게 엄격한 체계 속에서 논리를 전개하기보다 산책하듯 유유히 흘러가는 서술방식을 택했다. 걷다 보니 옆에서 ‘발로 읽고 발로 쓰는’ 니체가 서성이고, ‘도피의 열정을 걷기로 해소한’ 랭보가 지나가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걷는 것이 곧 저항’이었던 간디가 행진하는 식이다.

 루소·칸트·벤야민 같은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 사이에서 무심코 걷다 보면 어느새 걷기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논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선명해진다. 그는 이 학자들의 산책 속에서 자유·느림·고독·침묵·순례·영원·에너지 등의 키워드를 뽑아낸다. 예를들면 이런 문장이다.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걸을 때 누릴 수 있는 자유다. 걸어가는 몸은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라 그냥 태곳적에 시작된 생명의 흐름일 뿐이기 때문이다(17쪽-자유).’ ‘결국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걷기 시작하자마자 즉시 둘이 된다. 나는 일정한 속도로 걸으면서 내 몸을 격려하고 그의 비위를 맞추고 칭찬한다. 내 몸과 나 자신은 부부 같기도 하고 노래의 후렴 같기도 하다. 분명히 영혼은 육체의 증인이다.(89쪽-고독)’

 저자는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말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잊어버린 뒤 온전히 내 발걸음과 숨소리에 집중해 걸어볼 것을 권한다. 사실 그렇게 걸어본지 오래다. 휴대전화에 정신이 뺏겨 유령처럼 부유하거나, 런닝머신 위에서 헐떡이며 제자리 걸음만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여기서 신문을 덮고 루소처럼 오랫동안 걸어보자. ‘옛날의 인간을, 원초적인 인간을 자신 속에서 발견하기 위해.(112쪽)’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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