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윈프리의 멘토, 마야 안젤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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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평등, 관용 그리고 평화를 위해 싸운 전사였다.” 미국의 작가이자 배우, 시민운동가, 교수였던 마야 안젤루(Maya Angelou·사진)가 지난 29일(현지시간) 타계했다. 86세. 아들 가이 존슨은 어머니를 ‘전사(warrior)’로 지칭하며 노스캐롤라이나주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안젤루는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28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그는 3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와 지냈다. 하지만 7살 때 어머니의 남자친구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이 일을 알게 된 삼촌들이 그 남성을 폭행해 사망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일을 자신의 탓이라 여긴 안젤루는 5년간 입을 다물었다. 대신 조금씩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17살엔 미혼모가 된다. 후에 안젤루는 “아들을 키우기 위해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췄고 햄버거 가게에서 요리를 하고 한번은 자동차수리점에서 차량 페인트를 긁어내는 일도 해봤다”고 떠올렸다. 심지어 당시 성매매에까지 뛰어들었다.

 그는 69년 자전적인 소설 『나는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아네』를 출간하며 흑인 여성 최초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작가로 활동하면서 배우로 영화에도 출연했다. 또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마틴 루서 킹 목사와 교유하며 흑인 인권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다.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가 그를 멘토로 삼았다. 안젤루는 정식학위는 없었지만 수십여 개의 명예 학위를 받아 8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웨이크포리스트대의 종신교수로 있었다. 그는 93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축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안젤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는 “그는 내 어머니가 여동생의 이름을 ‘마야’라고 짓는 데 영감을 주었다”며 애도했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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