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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대신 '연금 생존권' 외친 공무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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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29일 서울 광화문의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적연금 개악 저지’를 외치는 공무원 노조. [최승식 기자]
장세정
사회부문 기자

29일 오전 10시30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평소와는 사뭇 다른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현직 공무원들이었고 청사 후문도 아닌 정문 앞에서 보란 듯이 100만 공무원의 생존권 사수(死守)를 외쳤기 때문이다.

 ‘공적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출범’을 알리는 집회였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지방공무원노조·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국대학노동조합·전국우정노동조합·소방발전협의회 등 50여 개 단체가 망라됐다.

 내년부터 공무원연금이 20% 깎일 것이라는 보도를 근거로 내세워 “정부가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공무원연금 개혁방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데, 절대 용인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안전행정부는 관련 보도를 부인했지만 이를 믿지 않았다.

 이들은 “공무원연금은 민간보다 60% 적은 퇴직금, 25% 적은 보수, 신분 제약에 따른 보상이자 후불적인 성격의 임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능해도 퇴출되지 않고 국민연금보다 훨씬 많은 공무원연금으로 노후가 보장된 온실 속 공무원들의 이런 주장을 매일 정글 같은 생존경쟁에 내몰린 국민이라면 얼마나 수긍할까.

 물론 연금 개혁을 일부 고위 관료가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공감할 만하다. 올해만 국민 세금 2조5000억원을 공무원연금 적자보전에 쏟아부어야 하는 마당에 ‘셀프 개혁’은 결코 안 된다. 노사정위원회처럼 국민·정부·공무원·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투명하고 과감하게 연금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새로 출범할 인사혁신처의 숙제다.

 백보 양보하더라도 공무원들의 투쟁 선언 시점은 부적절했다. 일부 집회 참가자가 가슴에 노란 추모 리본을 단 것처럼 아직도 세월호 참사 국면이 끝나지 않아서다. 행정개혁시민연합 박수정 사무총장은 “모두가 반성문을 쓰는 판인데, 자숙하면서 단체행동 수위를 조절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이런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는지 조진호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우리는 관피아(관료 마피아)가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애써 강조했다. 이충재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우리가 관피아와 똑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안대희와 달리 공무원은 30년을 뼈 빠지게 일해도 연금밖에 안 남는다”고 주장했다.

 하위직 공무원들이 관피아는 아니겠지만 기득권만 앞세우면 국민 눈에 ‘공피아(공무원 마피아)’로 비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가 준 가장 큰 교훈은 국가가 국가로서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라고 이날 주장했다. 그들이 놓친 게 있다. 공직자들이 공복(公僕)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기득권만 주장하면 무고한 국민이 불행해진다는 또 다른 교훈 말이다.

장세정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