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특별자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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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의 국내경제는 어딘가 균형을 잃고 있다. 전반적인 경기「무드」는 상승국면에 들어 있으나 누구나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 주된 원인은 경기회복이 고루 나타나지 않는데 있다. 국제수지의 호전과 함께 해외용역비 수입이 늘어나 내외수를 불문하고 최종소비수요가 급증하는데도 공급능력이 뒤따르지 못한 것이 당면 애로의 하나다.
그 동안 워낙 경기전망이 좋지 않아 기업의 설비투자가 침체했던 때문이다. 1·4분기부터 투자수요가 왕성한 것은 그만큼 기대치가 상승하고 있다는 증좌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경기가 회복되고 투자가 활기를 띠게 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통화 면에서 어떻게 실물경제를 뒷받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자율이나 자본수익율이 시장기능대로 움직여 돈의 흐름이 저절로 알맞게 배분되면 별문제 없으나 저축·투자가 각기 별도의 변수에 지배받는 현실에서는 통화당국의 조정 기능이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 이점에서 보면 연초 이래의 통화운용은 썩 잘한 것으론 보기 어렵다.
4월까지 이미 올해 여신공급의 절반 가까운 8천8백억원이 풀려나갔지만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오히려 가중되고 있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원인은 간단하다. 풀려나간 8천8백억원의 절반인 4천3백억원이 외화대부나 원화수입금융 등 이른바 국제수지관련 대출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이 부문의 대출이 중소기업과는 관련 없는 대기업·수출산업위주인 점을 고려했다면, 진작부터 중소기업을 위해 별도의 한도를 정하든가 특별지원계획을 세우는 것이 옳았다. 물론 중소기업자금지원계획이 따로 있기는 하나 홍로점설에 불과했던 것은 누구보다도 정책당국이 더 잘 알 것이다. 신임 한은 총재의 취임 일정이 자금배분의 균형과 중소기업지원을 지적한 점은 당면한 신용배분정책의 문젯점을 이해한 결과로 보인다.
특별대금으로 민간여신의 15%를 중소기업을 위해 지원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져야 되지만, 대기업 편향의 금융기관이 과연 빠듯한 여신한도 가운데서도 중소기업 대출을 해줄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때문에 한은의 특별재할로 이 자금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긴요하다. 자금성수기에는 으례 금융력이 강한 쪽으로 자금이 흘러가게 되어 경제의 균형이 깨어지기 쉽다.
중소기업의 지원, 육성을 약자에 대한 시혜나 사회 정책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시대착오 일뿐만 아니라 그런 접근방식으로는 고도산업화에의 발돋움은 끝내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발전하는 사회의 각광은 흔히 대기업이 받기 마련이나 그 근저는 역시 중소기업임을 투철하게 인식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실로 견실한 중소기업의 바탕 없는 경제는 모래탑에 불과하다.
생산이나 고용에서의 비중만으로서가 아니라 경제구조의 유기적 결합도의 증대를 통한 고밀도의 산업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도 중소기업의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재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평면적인 자금지원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의 계열화를 금융에서 지도하는 적극적 역할까지 맡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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