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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EC-121기 피격 사건|동해의 파고는 높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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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편집자주=69년4월15일 미 해군 EC-121기의 피추는 68년1월 「푸에블로」호 사건 이후 미국이 두번째로 북괴에 멍하니 당한 사건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보복 폭격을 주장했으나 군부와 여론의 반대에 밀려 정찰 재개와 「캄보디아」폭격이라는 대전으로 울분을 달랬다. 결국 미국은 공허한 「말의 시위」를 했을 뿐 이 사건을 흐지부지 잊고 말았다.
69년4월15일 아침 7시가 채 못돼 침실의 전화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키신저」의 전화였다. 「키신저」 (안보 담당 보좌관)는 북괴 「제트」기들이 31명의 승무원을 태운 미 해군 정찰기 1대를 격추했다는 보고를 알려왔다.
나는 즉시 집무실로 나가 정보 보고서를 읽었다. 북괴 연안 밖에서 정기적인 경찰 임무를 수행하던 EC-121기 (4발 「프러펠러」기) 1대가 북괴 측 공격으로 추락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정찰 비행은 지난 20년간 수행되어 왔고, 정찰기는 북괴 연안 40「마일」안에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힘에는 힘으로…>
EC-121기의 승무원들이 15개월 전 「푸에블로」호 사건 때처럼 북한에 붙잡혀 살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날 내내 우리는 승무원들이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라도 살아 있기를 빌었다.
「캄보디아」 영내 월맹군 성역에 대한 비밀 폭격 작전이 개시 된지 불과 1개월 뒤에 우리는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지역에서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다.
월맹군 공세에 대해 『우리는 시험받고 있다. 힘에는 힘으로 맞서야 한다』는 본능적인 방식으로 대처했듯이, 이 사건에 대한 나의 반응도 같았다.
16일 상오 10시, 우리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 국가 안보 회의를 소집했다.
「로저즈」 국무장관과 「레어드」 국방장관은 참자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 사건이 완전히 제한된 개별적 도발이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과 원인을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그뉴」 부통령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불만에 가득찬 「애그뉴」는 『어째서 우리는 언제나 제3자의 입장을 지키려고 하는가』고 따졌다.
그날 오전에는 아무 결정을 못했다. 두가지 선택 방안이 제시됐다. 첫째 방안은 북괴 비행장 1개소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함으로써 보복하는 것이고, 두번째 방안은 EC-121기의 정찰비행을 계속하되 전투기 호위를 붙인다는 것이었다.
어느 쪽 방안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북괴군은 잘 무장되어 있어서 만약 첫째 방안을 선택할 경우 우리는 보다 큰 손실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한국에서 전쟁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에 대처할 각오가 돼 있어야만 했다.
31명이나 살해하고 미국 위신에 계획적으로 먹칠한 행위에 대한 대응 치고는 두번째 방안은 너무 약했다. 이같은 상태에서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우리가 막대한 경비를 지출하고 있는 해외 활동의 효율성에 당연히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이날 하오 해안에서 90「마일」 떨어진 공해 상에서 기체 잔해와 함께 2구의 시체를 회수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제는 생존자가 있기를 바랄 수도 없으려니와 사고가 계획적이고도 잔인한 도발이라는 것도 의심할 나위 없게 됐다.
정보 보고들은 EC-121기의 격추도 「푸에블로」호의 납치 사건처럼 제한된 개별적 도발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김일성 생일 선물설>
이들 보고 중 하나는 4월15일이 김일성의 생일이라는 점을 들어 그의 생일 선물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월리엄·포터」 주한미 대사도 긴급 전문을 통해 보복 반대 주장을 강력히 지지했다. 그는 우리가 본격적인 군사 행동을 취하면 극렬한 북괴 지도자들의 술책에 말려들고 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키신저」와 나는 보복 조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
「키신저」는 미국의 강력한 대응책이 미국의 태도가 단호하다는 것을 최근 수년래 처음으로 보여주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강력한 대응 조치는 우방의 사기를 북돋우고 적을 주춤하게 만들 것이었다.
「키신저」와 함께 북괴가 한국을 공격할 가능성에 대해 검토했다. 「키신저」는 그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일 북괴가 한국을 공격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미국은 북괴를 굴복시키기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할 것인지 사전에 준비해야만했다.
나는 우선 보복 조치 계획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전투기 호위 아래 정찰 비행을 즉각 재개하더라도 보복 조치 방안은 방해받지 않을 것이므로 다음날 아침 기자 회견에서 정찰비행 재개를 선언했다.

<우방 사기에 영향>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세번째 가능성도 검토했다. 전투기 호위 아래 정찰 비행을 계속하면서 「캄보디아」안의 월맹군 성역에 두번째 폭격을 한다는 대안이었다.
이 방안은 북괴에 대한 직접 보복에 따른 위험을 회피시켜줄 것이며 북괴와 월맹의 지도자들에게 미국은 동맹국을 지원하고 침략을 저지할 결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었다.
4월18일 기자 회견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나는 정찰 비행을 계속하도록 명령했다. 앞으로 정찰기들은 전투기의 엄호를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협박이 아니다. 사실을 밝히는 것일 뿐이다.』 대 북괴 폭격 계획이 실행 단계에 들어서기 직전에 나는 이를 취소했다.
전투기 엄호하의 정찰 비행 재개와 「캄보디아」의 비밀 선별 폭격 재개를 병행시키기로 결정했다.
「키신저」는 북괴의 계획적인 도발에 어떤 형태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공산 세계와 대결하는 미국의 신뢰도가 좌우된다고 여전히 믿고 있었다.
소련과 월맹·중공 모두가 미국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모험이긴 하지만 우리가 반격을 가한다면 그들은 미국이 정신없이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상대하기 수월해졌다고 말할겁니다. 만일 꽁무니를 빼면 그들은 우리도 전 행정부와 다를 것 없이 똑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죠.』
우리가 단호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데는 동감이었지만, 지금이 과연 그럴 시기인지는 자신이 없었다.
북괴의 비행장 중 하나를 골라 보복 공격 한다하더라도 북괴 측이 더 이상 사태를 확대시키지 않으리라는 계산은 있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모험이었다.

<3주 걸린 정찰 재개>
그러나 만일 그들이 무력 도발을 하여 미국이 한국에서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월남전에 참전하고 있는 이상 우리는 다른 지역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치를만한 자원이나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또 「애그뉴」 부통령과 「미첼」 법무장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 안보회의 보좌관, 특히 「로저즈」 국무장관과 「레어드」 국방장관이 무력 보복 조치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것을 고려치 않을 수 없었다.
「키신저」는 행정부 성립 초기에 내각 안의 이견 노출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또 의회와 국민의 여론이 강력한 보복 조치에 따른 충격을 받아들일 처지가 아니라는 점에 동의했다.
전투기 호위하의 정찰 비행 재개를 경정했지만 그 실행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4월18일에 내린 지시에도 불구하고, 국방성은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정찰 비행 재개를 지체했다. 내 명령이 이행되기까지에는 거의 3주일이나 걸렸다. 뿐만 아니라 나는 국방성이 백악관에 보고 하지도 않고 지중해 정찰 비행을 취소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때문에 미국은 4월14일부터 5월8일까지 지중해와 북태평양 지역에서 예정된 공중 정찰활동을 수행하지 않았다. 이 두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민감한 전략적 지역이었다.

<두번 다신 용서 못해>
나는 이런 상황에 놀랐을 뿐 아니라 화가 났다. 북괴는 미국의 정찰 비행 활동을 중지시키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이 사건 덕분으로 대통령은 자신의 명령이 제대로 수행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래지 않아 우리가 다른 문제에 매달리게 되면서 EC-121기 피격 사건을 잊어 버렸다.
그러나 그 사건에 대해 우리가 보인 반응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응어리로 남아 나를 괴롭혔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우리는 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키신저」 보좌관에게 『이번에는 북괴가 용케도 잘 빠져나갔지만 다음에 또 그런 일이 벌어지면 두번 다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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