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중앙 미술 대전」에의 기대-내일을 위한 발굴·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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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중앙 미술 대전」의 발상은 1년 동안을 종합해 「에센스」를 뽑아 내자는 데 의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초대 작가의 선정에 있어 종래 작가의 이름 위주로 초대하던 것을 지양하고 그 해의 우수 작품 중심으로 발굴하자는 착상에서 비롯됐는데 공모전에서도 그런 방법이 적용됐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신인 공모 작품에 있어서도 추천위원이 추천하는 방식으로 하면 신인들이 갈팡질팡하는 것도 미연에 방지될 뿐더러 민전의 성격이 뚜렷해져 더 좋은 공모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의 공모전에선 이상하게도 상에 너무 집착하여 투기적이랄까 무분별하게 상타겠다고 참가하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이=대학 예비 고사를 두듯이 추천을 통하여 미리 걸러서, 질적으로나 성격면에서 선정해 응모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인데 사실 응모 작품들이 도박 비슷하게 내는 경향이 없지 않지요. 그러니까 일단 걸러 내게 하면 민전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게 되겠읍니다.
오=왜 그런 생각을 하는가 하면 종래 심사 제도에 모순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심사를 하다 보면 좋은 것이 떨어지는가 하면 엉뚱한 게 뽑히는 예도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이 얼마만큼 좋으냐 보다는 그날의 운수라 할까 분위기와 기분에 좌우되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이=그럼 응모작에 있어 발표된 작품과 신작의 문제가 있는데….
오=반반으로 해도 되겠지요. 다만 지방의 이름 없는 신인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찾아내느냐는 점과 추천 위원의 업무량이 과중해져서 난점이 없지 않지만 제도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추진하면 능히 실효를 얻을 수 있고 또 거기에 발굴의 의의가 참신하게 살려지리라 믿습니다.
이=작품 발표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없지 않지요. 그러나 어디선가 감시를 받고 있다, 객관적으로 평가된다고 의식하면 작가들이 발표 자체를 신중하게 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관료적 권위주의에 안주하는 작가들에게도 일침을 가하는 계기가 되겠습니다. 「중앙 미술 대전」이 초대 작가에게 기득권을 주지 않고 당년 초대제를 채택한 것은 바로 그런 점이겠읍니다.
오=민전이 국전의 재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격을 살리는 일이며, 그것이 곧 서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이=종래 민전이 단명했던 이유는 국전을 닮으려 했던데 있읍니다. 국전은 이제 「아카데믹」한 것만이 아니고 규모가 방대해져 백화점 식이 됐으므로 민전은 전문점 성격을 갖춰서 국전을 졸업한 뒤 다시 「데뷔」하는 곳이 됐으면 싶군요.
제 약력에도 1, 2회 했다가 없어진 민전이 여럿 있는데, 자칫 신인들이 국전에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여긴다면 그 민전은 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규모가 작더라도 특색 있게 지탱하는 게 장수하는 비결입니다.
오=추천에 있어서도 앞으로 전문성을 띠고 활동해야겠지만 특히 심사에 있어 사람이 많으니까 도리어 나빠지는 모순점이 있는데…
이=어느 심사에 나가 보니까 구경꾼인 줄 알았던 많은 사람이 다 심사위원이었습니다. 그 결과 3표만 얻어도 수상했습니다. 또 국전에선 인맥을 고려해 여러 명을 위촉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 모두 퇴장하고 2명만 남아 심사한 일이 있읍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의 심사 결과는 여럿이 한 것보다 좋은 결과였다는 뒷얘기였읍니다.
심사는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사람이 문제입니다. 소위 다수결의 헛점을 지양하자는 점에서 근래 외국에선 2, 3명명 심지어 1인에게 책임 지우는 풍조가 나타나고 있읍니다.
오= 「중앙 미술 대전」에서도 이점은 충분히 참작돼 줬으면 합니다. 추천 위원도 압축할수록 더 엄격하고 성격적인 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다수의 심사라면 「미스·코리아」처럼 문화계 인사나 신문기자 등이 모두 참여하는 인기 투표가 가장 적절하겠지요(웃음).
이=다음엔 심사와 그 위원 명단의 공개 문제인데 과거 못 밝혔던 이유는 뒷거래가 있을까 심사위원을 불신한 때문인데, 인원을 좁히면서 애초에 공개해 놓으면 더 조심스러워지고 사명감이 높아지리라 생각됩니다. 만약 공개하면서 사람이 많으면 연대 책임의 은폐처를 만드는 결과가 되지요.
오=심사위원과의 뒷거래 얘기는 이제 지양할 때가 됐읍니다. 그만큼 과감하고 혁신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민전이 굳이 어떤 주제나 이념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런 심사 과정에서 성격이 두드러지기 마련이죠.
그런데 공모전에 있어 그해 수상으로 끝나지 않고 몇 년간 지켜보는 문제를 생각해 봐야 겠읍니다. 기득권을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2, 3년간 무감사로 내보여 평가한다든가 그후 초대 대상으로 검토하는 등 숨통을 열어 줬으면 합니다. 그것은 개인전 지원보다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이=그 점은 초대전에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 당장 작품 구입만이 아니라 연거푸 몇 회 초대되면 특별전이나 화집 등의 혜택이 바람직합니다.
오=이제 「중앙 미술 대전」에서 오늘의 「에센스」를 발굴하고 평가하는데는 분산되고 헤벌어져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읍니다. 압축할수록 성격이 드러나게 돼 당초의 발상이 빛나게 되리라 믿습니다. <끝>【정리=이종석 기자】

<차례>
①한국 미술 60년의 반성
②무엇이 「한국적」인가
③추상과 구상이라는 것
④민전이 지녀야 할 문제 의식
⑤내일을 위한 발굴·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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