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낮은 산업 재편성 필요|수입 자유화 조치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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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번의 수입 자유화 조치는 그 규모에 있어서나 그것이 갖는 경제적 의미에 있어서나 경제 발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뜻이 있다 하겠다. 이것은 우리 경제가 그만큼 자신이 있고 성숙했음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이며 대내적으로는 경제 저조가 능률 체제로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는 것이다.
후세의 경제 분석가들은 한국 경제의 발전에 있어서 개방 체제와 자유화 단계가 시작되는 서장으로서 이번 조치를 평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경제의 당면 여건에 비추어 이번의 조치가 갖는 의미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우리 산업의 국제적 경쟁 산업화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산업의 냉수마찰에 비유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냉수마찰의 훈련을 통해서 추위와 감기를 이겨내듯 수입 개방으로 인한 국내 산업의 고통과 경쟁을 통해서 외국 산업에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산업합리화를 유도하자는 것이니 즉 그 동안에는 기업이 노임 등 줄 것은 싸게 주고 제품 값은 비싸게 받아 이른바 가격을 통한 이익을 추구해 왔던 것이나 앞으로는 생산의 기술적 효율을 통해서 생산성으로 이익을 내도록 하려는 것이다.
둘째로 이번 조치는 기업의 자본축적뿐 아니라 소비자의 후생 증대도 중요하다는 사회 정책적 의미가 있다. 비싼 국산품 대신에 값싼 외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으로부터 가계로 소득이 이전됨을 뜻한다. 비싸더라도 무작정 국산품을 써야 한다는 지금까지의 경제 형태는 애국적일지언정 합리적인 것은 아니며 따라서 이번의 조치는 금후의 우리 경제가 애국심보다는 합리에 의해서 굴러가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번의 조치는 경기 확대와 경제 안정을 병행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당면한 경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정책 수단들은 경기와 안정에 미치는 효과가 서로 상충하게 마련인데 수입 자유화는 수입 증대로 경기도 좋아지고 통화 환수로 경제 안정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에 경기 확대와 안정을 함께 필요로 하는 현 경제 여건에 비추어 유효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수행에는 외환면의 여유가 전제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거시적으로 볼 때 수입 자유화는 필요하고도 불가피한 당위이지만 이것을 미시적으로 우리의 기업 하나 하나를 놓고 보면 수입 자유화의 부작용은 다른 나라의 자유화 단계에 비해서 매우 크다고 생각되며 여기에 우리의 고충이 있다 할 것이다.
즉 우리 기업들의 현 여건은 다른 나라들의 수입 자유화 단계에 비해서 재무구조는 취약하고 금융은 더 어려운 상태에 있고 내수 시장은 좁으며 산업마다, 그리고 동종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마다 기술·규모·생산성 등의 격차가 커서 이른바 2중 구조가 깊은 것이 현실이다. 이 말은 즉 우리 기업들이 수입 자유화에 대한 적응 능력이 작아서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현상이 왜 생기는가 하면 우리 경제가 저 노임을 무기로 하여 외향적인 공업화를 추진하다 보니 대외적으로는 성숙 단계에 이르렀는데 대내적으로는 아직도 소년기에 있다는 모순에 기인한다.
그러기 때문에 수입 자유화의 한계와 방법 선택에 있어서는 이러한 개별 기업들의 부정적 측면을 되도록 충분히 반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조치에서 발표된 수입 자유화의 내용을 볼 때 대체로 이러한 문젯점들을 반영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엿 볼 수 있다. 다만 경쟁력이 장기적으로 기대될 수 없는 산업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다고 느낀다. 이런 경우로서는 농업·중소기업 제품·일부 중화학 제품 등이 있다 하겠는데 농업 보호는 어쩔 수 없을 것이나 중소기업 제품의 경우는 관세 보호로 차차 대체하여 경쟁력이 너무 낮은 일부 산업은 산업을 재편성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장기적으로 경쟁성이 없는 중화학 제품은 당장 개방하는 것이 자원의 낭비를 줄이는 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조치의 성패는 보완 조치를 광범위하게 필요로 할 것이니 신규사업 및 외자 도입 인가시에 철저한 경쟁력 기준에 의한 심사, 관세의 전면 재조정, 보호보다 지원 중심의 산업 정책, 총수요 보완적인 재정 운용, 금융의 자금 평준화 기능 확대 등 종합적인 대책이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수입 증가는 기업의 자금 수요를 늘려 자금 경색을 가중하게 될 것인데 이것이 다시 통화 증발을 유발하거나 아니면 국내 경기의 위축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금융시장을 유동화 시키고 자금이 고르게 배분 되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박승 <중앙대 교수·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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