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펀드 싸졌다" … 가치투자자에겐 기회 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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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연초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는 삼성전자를 두고 ‘가치주’라는 논평이 등장했다. 주가가 기업 가치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됐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도 담겨 있었다. 이제는 눈부신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성장주)으로 보기도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사상 최대 이익을 견인한 스마트폰 부문의 수익성이 점차 둔화되는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바통을 이어받을 차세대 주자가 뚜렷하게 부상하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던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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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 전문가들 사이에서 같은 표현이 이제 중국 시장을 놓고 등장하고 있다. 현대증권은 최근 ‘가치투자 영역에 들어선 중국’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역시 중의적이다.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불리던 중국의 성장률은 7% 중반까지 후퇴했다. 게다가 빠른 성장의 후유증은 부동산시장 불안으로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눈높이를 낮추고, 초점을 성장성이 아닌 주식의 가격에 맞춰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는 주장이다. 현대증권 오온수 연구원은 “저평가된 자산을 싸게 사는 것이 가치투자의 핵심이라면 글로벌 투자 관점에서 가장 적합한 시장은 바로 중국”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회복력이 낮았던 시장 중 하나다. 2007년 6000을 찍으며 정점에 이르렀던 상하이 종합지수는 현재 2030 선에 머물러 있다. 위기의 발원지였던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올 들어서도 상하이 지수는 3.8% 하락했다. 23일 기준으로 중국 주식 펀드의 평균 수익률도 -8%다. 설정액이 1조원을 넘는 펀드인 ‘신한BNPP봉쥬르차이나2’(-9.06%), ‘미래에셋차이나솔로몬’(-5.79%)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한 듯하다. 2010년 이후 중국 펀드에선 조 단위의 자금이 빠져나갔고 올 들어서도 6000억원 이상이 순유출됐다.

 하지만 가치투자의 관점에서 새롭게 중국 시장에 접근하는 투자자에겐 이런 시장 상황이 달라 보일 수 있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주식, 인기가 없어 제값보다 떨어진 주식을 눈여겨보는 게 가치투자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주가의 수준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잣대는 주가수익비율(PER)이다. 주가가 주당순이익(EPS)의 몇 배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중국 증시 전체의 PER은 2007년 24배에서 현재 8배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선진국(14.8배)이나 신흥국(10배) 평균에 비해서도 상당히 낮다. 또 가치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투자처를 선별할 때 자주 쓰는 잣대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증시의 시가총액 비중이다. 중국의 이 비율은 현재 39.3% 수준이다. 미국은 이미 130%를 넘어서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한국(105.3%), 일본(73.3%)도 중국에 비해선 높은 편이다.

 다만 가치투자 방식으로 접근할 때는 장기 투자를 각오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주가가 언제 제 가치를 찾아갈지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증시가 단기간에 오를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경기 하강에도 중국 정부의 부양책은 예전에 비해 미지근하다. 신영증권 김선영 연구원은 “중국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정부의 정책”이라면서 “결국 중국 증시의 가장 큰 리스크도 정치 리스크”라고 말했다. 여전한 투명성 논란도 중국 투자 시 염두에 둬야 할 요소다.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중국 증시가 저평가된 데에는 기업 실적은 물론 수출, 성장률 등 통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탓도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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