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청이 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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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타의 조부는 광대한 연초재배농장을 가진 부호였다. 그러나 아버지대에는 담배가 안되어 면화를 심었는데 그것마저 시원치 않았다.
이제는 끼니마저 거를 정도로 가난하다. 그래도 땅을 버리지 못한다. 방적공장으로 옮겨가라고 권고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하기를 『하느님이 땅을 마련해 주시고, 그것을 갈도록 나에게 이르신 거야. 그런 땅을 어떻게 버리겠느냐』고 했다.
어느날 그는 씨를 뿌리려고 밭에 불을 놓다 잘못하여 아내와 함께 타 죽는다. 어스킨·콜드웰의 소설 『토바코·로드』의 줄거리―.
이 소설의 무대는 미국 남부의 가난한 농촌이다. 그리고 지타 일가의 딸 에리는 언청이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콜드웰은 무지와 빈곤의 슬픈 상징으로서 에리를 언청이로 만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남부를 즐겨 그린 포크너나 스타인벡의 소설에도 언청이가 나온 것 같다.
그러나 『토바코·로드』가 발표된 1932년에는 동부에서는 이미 언청이를 볼 수 없었다.
이 소설이 특히 동부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전편을 흐르는 휴머니즘 탓도 있지만, 남부의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큰 탓도 있었다.
언청이는 우리 나라 속담에서까지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아왔다.
『언청이 아니면 일색』, 『언청이 퉁소 대듯』…. 하나같이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언청이의 원인은 아직도 뚜렷하지는 않다. 유전적이라고는 하지만 확실한 사례는 7, 8%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충 1천명에 1명 꼴로 언청이 아이가 태어난다. 우리 나라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콧수염의 시작도 실은 언청이를 가리기 위해 생겼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를 비롯해서 수염이 텁수룩했던 고대의 유명한 영웅·정치가들 중에도 언청이가 많았다고 볼만도 하다.
언청이는 조금도 흉이 될 수가 없다. 물론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흉이 될 수 없는걸 가지고 놀려대는 사람은 어린이들뿐만이 아니다.
언청이는 얼마든지 고칠 수도 있다. 다만 생후 3개월쯤에 수술해야하고, 10일정도 입원해야 한다는 경제적 부담이 있을 뿐이다.
만약에 첫번 수술로 혹 자국이 남아있다면 교정성형수술을 한번 더 하면 멀쩡해진다.
이런 수술을 아직 받지 못한 언청이가 전국에 약 2만명이 된다고 한다. 그 중의 대부분은 가난하거나 무지해서 이런 수술을 받을 엄두도 못 내온 사람들이다.
앞으로 이들이 무료로 수술을 받게된다고 한다.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의 그늘졌던 표정이 봄과 함께 활짝 펴오르는 즐거움을 우리도 느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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