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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태백 탄광지대|탄갱 속은 어두워도 보람은 밝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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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진한 초록빛을 뽐내며 새파란 동해와 나란히 달리던 태백산맥이 뚝 끊어지며 온통 검은 빛 투성이 인 곳- 태백탄전지대.
땅속으로 수천 길 칠흑 갱 속을 파고들어서는 높게 높게만 쌓아올린 석탄더미가 반짝인다.
자연에 도전한 억센 인간승리가 이곳에 응결돼 있는 것이다.
어느 때는 생명과 맞바꾸기도 하고 비애와 한숨을 섞어 가며 캐어 낸 한줌의 석탄이 모여 조국의 내일을 덮여 줄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해발 천2백m>
전국 석탄생산의 74%를 차지하고 있는 강원도 삼척·정선·영월을 잇는 태백탄전은 한국의 어제·오늘·내일을 연결시켜 주는 산업지대.
1930년 전까지만 해도 불모지로 버려져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해발 6백∼1천2백m의 첩첩 산 계곡이던 태백탄전에 지금은 폐광이 되어 버린 석공 영월광업 소가 일본사람들 손에 의해 개발된 것을 효시로 하여 태백탄전 48년의 역사 속에는 숱한 이 나라 어제의 한이 깔려 있다.
일제 착취수단의 하나로 그후 장성 탄광 등 너 댓 군데가 개발됐으나 겨우 탄전의 원시 지에 불과하던 이곳은 50년대부터 본격적인 우리 기술이 오늘의 탄광촌을 만들기 시작했다.
연탄이 대중연료로 각광받은 55년부터 태백탄전은 열기를 뿜었다.
태백산맥 곳곳은 허리가 끊기고 그 밑으로 거미줄 보다 더한 갱도가 뚫리면서부터 24시간 탄을 토해 내는 갱 구는 흡사 인간에게 불(화)을 갖다 준「프로메테우스」의 입(ㅁ)을 연장케 하고 있다.
태백준령에 광부「아파트」가 들어서고 말끔히 단장된「아스팔트」도로가 사방으로 뻗어 가면서 장성·가지·철암·도계·고한·사북 지방은 인구 40만의 광역도시로 자리를 굳혔다.
현재 전국에 산재한 탄광 수는 1백여 개. 여기서 일하고 있는 5만여 광부들이 올해 캐낼 채탄목표량은 1천8백만t. 1인당 3백60t을 캐낼 예정이다.
하루 3교대로 경사 20도에 폭이 사방6척도 안 되는 2백여 m의 좁은 갱도를 광부들은 40∼50km의 무거운 갱 목을 지고도 다람쥐처럼 잽싸게 오르내리고 있다.『태백산 등허리요 낙동강 줄기/여기는 삼한이라 우리의 탄광/하늘이 주신 보배 우리의 선물/한 덩이 또 한 덩이 피땀에 젖어/이 강산 살찌리라 3천만 행수』탄전지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힘차게 부르는「삼 탄가」속에 산업전사의 애국심과 자부심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들의 굽힐 줄 모르는 의욕을 뒷받침해 줄 작업 환경·시설·임금문제 등은 광부들의 얼굴을 밝게만 해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한해동안 사망한 광부는 2백9명. 다친 사람은 무려 5천여 명에 이른다.
이 재해 율은 광부 10명에 1명 꼴로 사상한 셈이다.
채탄기술도 이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강원탄광은 10일 39억9천여 만 원을 들여 5년 3개월만에 총 연장 1천2백3m의 제3수직 갱을 완공했다.

<10%의 사상 율>
탄광갱도 가운데 가장 깊은 것으로 해저 4백2m까지 내려가 외국처럼 해저 탄 개발의 새장을 연 것이다.
40년 동안 탄광기술개발에 몸담아 왔다는 김유선씨(57·강원탄광 사장)는『국내 탄광도 인력에 의존하는 재래식 채광법에서 탈피, 심 부 악조건에 대응할 수 있는 채탄기계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탄광개발 당시 인구 6천 명이었던 황지읍은 11배가 늘어난 7만의 도시로 자랐다. 그러나 아직도 문제점은 많다.
온통 검은 것만을 보고자란 아이들은 미술시간에 산도, 시냇물도 검은색으로 칠해 놓는다.
그래서 자녀교육이 가장 큰 문제. 광산촌일대에 즐비하게 들어선 술집이 또 하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일의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광부들이 비교적 즐겨 술을 마시기 때문에 술집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
이런 점을 감안해서 요즘은 지역마다 새마을운동이 벌어지고 석공 장성탄광의 경우 작년 4월 인근 2만평의 야산을 개간, 광부 출자금 1천7백75만원으로 소 70마리를 구입, 협동농장을 운영하고 있고 청소년학교를 건립, 진학 못한 순직광부 자녀들의 기능교육도 시키고 있다.

<「버스」편 늘려야>
후생·복지시설도 크게 향상돼 장성에는 3백여 가구 분의 대규모「아파트」가 오는 6월 완공될 예정이고 광부 사택 입주 율도 평균 70%선에 이르러 81년까지는 광부들이 모두 자기 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광부들의 임금문제는 쉽사리 해결이 안돼 광부들은 안타깝기만 하다. 광부 평균임금은 8만4천 원 선에 머물러 5인 가족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저생계비에 5만원 가량이 미달되고 있다.
광부가족들의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기차 타고 동해안으로 나가 푸른 물을 바라보며 바다 공기 한번 실컷 들이마셔 보는 것이라고 이들은 웃으며 말한다.
주위에 관광지라곤 없는 탄전지대 사람들은 이곳에서 50km쯤 떨어진 삼척·강릉을 제일의 관광지로 꼽고 있다.
차편이라곤 고작 황지·고한에 서는 태백선(제천∼고한 간)과 서울∼강릉간을 운행하는 2개 열차가 있을 뿐이고 철암·도계에서는 영주∼강릉간을·운행하는 영동 선이 있을 뿐 「버스」편은 길이 나빠 운행을 못하고 있다.
『바다도 까만 줄 알았어요. 파랗다는 물과 석탄가루 안 묻은 아빠얼굴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황지 국민 교에 다니는 홍유정 양(8)은 어느 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홍 양의 광부 아빠는 자신들이 흘리는 피땀으로『이 나라 삼천만이 살찌고 행복하다』는 자부심을 잊지 않는다. 【글=탁경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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