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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오늘의 교육풍토를 총 검토한다|형편없는 시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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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2월10일. 서울Y여중의 졸업식 날이었다. 강당이 없는 이 학교는 각 교실에서 졸업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하기에는 날씨가 차가웠고 또 얼었다 녹았다 하는 모래땅 운동장은 진창처럼 돼 있어 운동장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졸업반 학생들은 여느 때처럼 각자의 교실에서 자기 책상에 앉아 담임선생만을 모시고「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교장선생의 훈화를 들어가며 석별의 정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이색…방송 졸업식>
우등상장이 수여되고 공로표창이 주어지는 것도「스피커」를 통해 중계됐다. 졸업하는 학생들은 3층과 4층 교실에 앉아 있고 상을 받는 학생들은 호명 받으면 복도에 꽉 들어찬 학부모들을 제치고 1층 교무실로 뛰어 내려갔다. 교실 안에는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어 가족들이나 친지들은 모두 복도에 엉겨 창문을 통해 기웃거리며 장한 졸업생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학교측은 돌연 복도에 들어찬 학부모들에게『미안하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가 달라』고 방송했다. 1천여 명의 학부모들은 무슨 중대한 사태가 난 것으로 알고 앞을 다투어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건물이 무너져 내릴 위험이 많다는 이 학교 시공업자 K씨의 다급한 요청에 따라 학교측이 긴급조치를 취한 것이 학교건물은 68년에 완공됐었다.
정든 학교를 3년만에 떠나는 마당에 학생들은 그렇지 않아도 서운했던 마음을 달래지 못해 교실마다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교장선생은 몰론 각자가 좋아했던 선생들, 그리고 친구나 부형들의 얼굴조차 맞대지 못하고 따로 떨어져「스피커」소리를 들으면서 보내야만 하는 중학생활의「마지막 날」은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서글픔을 참지 못하게 했으리라-.
요즈음의 중-고등학교에서는 강당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니 강당을 제대로 갖춘 학교가 몇 군데 안 된다. 그래서 이른바「방송졸업식」을 거행하는 학교가 꽤나 늘었다.
지난 2월4일 역시 방송졸업식을 한 S여중. 학교운동장이라야 전교생이 제대로 열을 맞춰 늘어설 수가 없을 정도로 비좁다.
조회 때면 전교생이 어깨를 맞대고 도열하는 독특한 방법을 쓰고 있다. 마치 만원「버스」에 꽉 들어찬 승객들의 모습이다.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등교한 학생들은 만원 교정에서 다시 애를 태운다고 나 할까. 체육시간도 한 학급씩밖에 하지 못해 실내수업으로 때우는 경우가 잦다.
그나마 지금 쓰고 있는 운동장은 지난해에 시교위의 거센 압력(?) 때문에 함께 쓰고 있던 고등학교가 G동으로 이사를 해 중학교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어 훨씬 여유가 생긴 것이다.

<만원버스 승객 방 불>
시교위 측은 운동장 등 시설이 부족한 이곳 S여고 측에 대해 학교이전을 강력히 종용해 오다 끝내 말을 듣지 않자 마침내는 신입생 배정을 중지하는 등 강경한 조치를 취해 학교이전이 이루어진 것.
요새도 S여중은 체육대회 등 큰 행사는 G동의 고등학교 운동장을 빌어서 하고 있다.
서울 변두리 국민학교가 학생수가 불어「초대형」이 됨에 따라 조회는 물론 운동회까지도 학년별로 나누어 실시하거나 아예 못하는 것 은 아주 흔해졌다.
Y중학은 지하교실로 유명하다. 당초 학교건물을 지을 때부터 부지가 모자라 30여 개의 지하교실을 만들게 됐다는 것.
운동장을 파헤쳐 그 밑에 교실을 만든 것이다. 좁은 대지를 활용한다는 착상은 그럴 듯해 보이나 전등불 없이는 수업이 안되고 환기도 지상건물만 못해 학생들의 건강문제도 고려해 볼 만한 일. 물론 전기 값도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 학교는 땅속으로만 파고든 것이 아니라 옥상에까지 진출, 5층 건물 위에는 체육관을 지어 놓았다.
옥상체육관 말고도 옥상을 아예 운동장으로 쓰는 학교도 있다. 운동장이라야 2개 학급이 한꺼번에 체육시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좁기 때문이다(S상전). 또는 초·중·고교 등 이 한꺼번에 몰려 있어 옥상시설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90%가 기준미달>
이 같은 시설부족 외에 실험실습실이나 자치활동 등에 필요한「특별교실」은 90%가 기준미달이다.
『입시위주의 교육풍토에서 특별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해요. 자연히 기재나 시설 등에 소홀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K고교 K교감의 말이다.
몇 개 안 되는 실습기재도 교장실「캐비닛」 안에서 낮잠자기 일쑤-.『실험교육을 하려 해도 웃사람의 눈치보기가 싫어 대체로 그만둡니다. 학생들이 잘못 다루어 어쩌다 훼손되는 날이면 뒤처리가 시끄러워요. 수업 중에 사용하도록 돼 있는 실습기재는 쓰는 것보다 안 쓰는 편이 훨씬 현명해요』- 어느 사립고교 과학담당 교사의 한숨 섞인 변명이다.
따라서 실험 실습 비의 실질적인 행방은 교장이나 서무주임만이 알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겉으로야 상당액이 실험실습 비로 지출되고 있다.

<침대에 욕실까지>
이에 비해 몇몇 사립고교 교장실은 지나치게 호화롭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Y교장실은 일반에게 잘 공개되지 않는다. 시교위 장학사들이 학교로 찾아갈 경우에도 평상시에 잘 쓰지 않던 허술한 중학교 교장실로 안내된다고 했다.
교장실의 창문「커튼」에서부터「테이블」의 집기까지 특급「호텔」의 특실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푹신한 침대에 욕실이 달려 있고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장실을 화려하게 꾸밀 줄은 알면서도 학생들을 위한 과학기재나 시설 등을 마련하는데는 인색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교육현실이나 아닌지….』지난해까지 교위에 근무했다는 어느 교감의 걱정이다. <유팔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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