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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경제사] 철도왕·석유왕·금융왕의 전횡, 반독점법 자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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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호 20면

그림1 우도 케플러, 『세월이 참 많이 변했네!』, 『퍽(Puck)』, 1914년 3월 7일자.

우선 유령으로 등장하는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에 대해 알아보자. 밴더빌트는 뉴욕의 갑부 아들로 태어나 젊어서는 주로 수상 운송업에 종사하다가 중년의 나이에 철도 사업에 뛰어들었다. 1860년대에 뉴욕 중심부를 관통하는 뉴욕중앙철로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그는 ‘철도왕’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영향력 있는 사업가로 부상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한 신문기자가 밴더빌트에게 우편열차의 영업 중단이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묻자, 밴더빌트는 “‘망할 놈의 대중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일화가 퍼지면서 밴더빌트의 이 말은 대기업가가 대중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널리 인용되게 되었다. 1914년 『퍽(Puck)』이라는 미국의 대중잡지에 실린 우도 케플러(Udo J. Keppler)의 <그림 1>은 이 일화를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세계화는 어떻게 진화했나 ⑥ 거대기업의 등장, 번영과 쇠퇴

독점기업가, 부 앞세워 의회권력도 장악
1870년대부터 기업들이 합병을 통해 거대한 기업집단으로 재탄생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미국이 움직임을 선도했는데, 밴더빌트는 바로 이런 변화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초대형 독점기업의 형성은 철도부문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더욱 대대적인 독점화는 록펠러(John D. Rockefeller)가 활동한 석유 부문에서 나타났다. 그는 1860년대에 석유산업에 뛰어들어 성장을 거듭했고 1879년에는 석유업계의 기업들을 대거 통합해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Standard Oil Trust)를 조직했다. 이 독점조직을 통해 ‘석유왕’ 록펠러는 미국 정유시설의 약 90%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는 석유를 극히 낮은 가격에 판매해 경쟁자들을 도산시키고 그 후에는 독점력을 이용해 가격을 크게 높여 폭리를 취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록펠러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축적한 인물이었다. 자산규모를 실질가치로 계산하면 그는 미국 역대 최고의 부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밴더빌트는 ‘강철왕’ 카네기(Andrew Carnegie)와 더불어 2, 3위를 다투었다. 금융부문에서는 모건(J. P. Morgan)의 지배력이 가장 컸다. 1901년 ‘금융왕’ 모건은 카네기의 철강회사를 포함한 7개의 대형 철강회사를 석탄회사들과 통합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그 결과로 초거대기업 유에스스틸(U. S. Steel)이 탄생되었다.

그림2 조셉 케플러, 『상원의 보스들』, 『퍽(Puck)』, 1889년 1월 23일자.

거대기업의 수장들은 엄청난 시장지배력을 휘둘렀다. 철도왕, 석유왕, 강철왕, 금융왕이 군림하는 경제에서 소비자들과 소규모 생산자들은 독점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개미’들은 정치와 입법이라는 채널을 통해 상황을 바꾸고자 애를 썼지만, 그곳에서도 거대기업의 막강한 영향력에 부딪혀 절망하기 일쑤였다. 우도 케플러의 아버지 조셉 케플러(Joseph F. Keppler)가 1889년에 발표한 <그림 2>는 일찍부터 미국 정치가 초대형 기업집단에 의해 휘둘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상원의 보스들』이라는 제목의 이 만평을 보면 상원의원들 뒤로 엄청나게 큰 덩치의 기업집단(트러스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독점가용 입구’를 통해 의사당 안으로 들어선다. 반면에 왼편 멀리 ‘일반인 입구’는 빗장이 잠겨 있다. 상원의원들은 수시로 고개를 뒤로 돌려 거대 기업집단들의 눈치를 살핀다. 벽에 걸린 현판에는 ‘독점가의, 독점가에 의한, 독점가를 위한 상원’이라고 적혀 있다. 대자본의 영향력에 예속된 정치판에 대한 신랄한 풍자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반독점 투사
특정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지나치게 커지면 다른 기업들이 진입해 경쟁을 펼칠 기회가 애초부터 차단되기 쉽다. 그리고 독점적 지위에 오른 기업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산량을 조정하고 가격을 높게 유지한다. 이는 결국 소비자의 피해로 귀결된다. 독점의 폐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는 개선책을 내놓아야만 했다. 마침내 1890년에 셔먼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이 제정되어 트러스트 조직을 불법화했다. 거대기업의 확장 가도에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법률의 제정이 곧 현실에서 힘을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까지 반독점법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그림3 프랭크 낸키벨, 『어린 헤라클레스와 스탠더드오일 뱀들』, 『퍽(Puck)』, 1906년 5월 23일자.

루스벨트의 개혁정책은 어떻게 묘사되었을까? 프랭크 낸키벨(Frank. A. Nankivell)의 <그림 3>에서 루스벨트가 어린 헤라클레스로 등장한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기억해 보자.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신과 인간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제우스가 헤라클레스를 편애하자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여신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8개월 된 헤라클레스의 요람에 두 마리의 독사를 풀어놓는다. 그런데 아기는 괴력으로 두 뱀의 목을 졸라 죽인다. 이 만평에서 루스벨트는 정치가 앨드리치(Nelson W. Aldrich)의 머리와 기업가 록펠러(John D. Rockefeller)의 몸통을 쥐고 있다. 앨드리치는 전차·설탕·고무·은행 등에서 내부거래로 큰돈을 번 인물이었다. 그와 석유재벌 록펠러는 자식들의 혼인으로 1901년 사돈지간이 되었다. 1906년에 발표된 이 그림에서 두 인물은 충혈된 눈을 가진 위협적인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루스벨트는 이를 악물고 이들을 제압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현실에서 루스벨트와 그의 뒤를 이은 대통령들은 점차 거대기업의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제압해 가는 데 성공했다. 1903년에 법무부 내에 독점금지국이 설립되었고 1906년에는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었다. 재판의 결과로 막강한 시장지배력을 과시하던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는 1911년에 30개의 회사로 강제 분할되는 운명을 맞았다. 1914년에 제정된 클레이턴법(Clayton Act)은 반독점 규제를 더욱 강화했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거쳐 미국은 거대기업의 독점력을 통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게 되었다.

<그림 1>로 돌아가 보자. 단상의 인물은 미국을 의인화한 엉클 샘(Uncle Sam)이다. 철도사업가들이 클레이턴법이 제정된 해인 1914년에 함께 모여 정부에 청원을 하고 있다. 철도요금을 인상해 달라는 것이다. 과거에 독점적 지배력을 한껏 누렸던 밴더빌트는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나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자신이 살던 시대에는 철도요금을 마음 내키는 대로 인상할 수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이제는 기업가들이 정부에 청원을 올리고 정부가 우호적으로 결정을 내려주기만을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미국에서 본격화된 기업합병과 독점화의 움직임은 곧 전 세계로 파급되었다. 영국과 프랑스처럼 초대형기업이 상대적으로 덜 형성된 나라도 있지만, 독일과 일본에서는 합병 붐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국적을 특정하기 어려운 초국적 성격의 기업집단들도 생겨났다. 또한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면서 독점기업을 통제하는 제도도 각국의 상황에 맞추어 발전해 갔다. 미국에서 시작된 거대기업 체제와 공정거래 제도는 이렇게 진화를 거듭하면서 세계경제의 모습을 바꿔 놓았다. 



송병건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제사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세계경제사 들어서기』(2013), 『경제사:세계화와 세계경제의 역사』(2012), 『영국 근대화의 재구성』(2008) 등 경제사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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