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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후폭풍 … 육사 출신 안보라인 이례적 동시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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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간첩 증거 조작 개입이 드러난 후부터 사퇴 여론에 직면해 왔다. 김장수 전 실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안보실이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발언으로 비판받았다. 지난해 6월 청와대에서 외교안보장관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남 전 원장, 김관진 국방장관, 김 전 실장(왼쪽부터). [중앙포토]

남재준(70) 국가정보원장이 결국 물러났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정쟁의 중심에 있던 국정원을 이끌어 왔으나 세월호 참사의 후폭풍을 피해갈 순 없었다.

 육사(25기)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남 전 원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3월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에 오르며 육사 출신 안보라인(남 전 국정원장·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김관진 국방장관)의 맏형 노릇을 했다.

 북한 핵실험 등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 돌직구·강골 스타일의 남 전 원장은 대북 정보력 강화의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남재준의 국정원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직 시절이던 지난 대선 때 댓글 조작을 통해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정치 쟁점으로 부각되면서였다.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전신)은 지난해 박 대통령의 사과와 특검을 요구하며 54일간 장외투쟁을 벌였다.

  야권의 공세가 커지던 상황에서 남 전 원장은 지난해 6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 야권에선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관여했다”고 비판했다. 이때부터 야권은 남 전 원장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지난해 9월 혼외아들 의혹으로 물러났을 때도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고 공격했다.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은 남 전 원장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줬다. 대선 댓글 사건 때와 달리 간첩 증거조작 사건은 남 전 원장의 취임 이후 생긴 문제였기 때문이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10일 직접 나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실상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나 1년여의 정치공방 중에도 남 전 원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야당이 국정원 개혁을 압박하는 와중에도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국정원의 ‘셀프 개혁’에 힘을 실어줬다.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대해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남 전 원장의 거취에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도 당시 “웬만하면 남 원장을 보호하고 싶은 분위기”라고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민심이 크게 흔들리면서 남 전 원장은 더 이상 품고 갈 수 없는 카드가 됐다. 내각 총사퇴와 김기춘 비서실장·남 전 원장·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의 동시 교체를 요구하는 야당의 목소리를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세월호 참사 하루 전인 지난달 15일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사과드린다”고 말한 게 공개석상에서 남 원장의 마지막이 됐다.

 국정원장 후임으로는 이병기 주일대사가 주목받고 있다. 외시(8회) 출신의 이 대사는 김영삼 정부 때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서 제2특보를 거쳐 2차장을 지냈다.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을 도왔고, 지난해 4월 대사에 부임했다. 청와대 측이 최근 이 대사와 접촉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검찰(사시 16회)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낸 김성호 전 국정원장도 비중 있게 거론된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가까워 청와대와 호흡에도 문제가 없다는 평가다. 국회 정보위원장을 지낸 권영세 주중대사, 국정원 2차장 경험이 있는 새누리당 김회선 의원 등도 정부 출범 때 이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펴낼 정도로 공안통이란 점에서 후보군에 포함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국정원장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인선은 이르면 다음 주 초 있을 전망이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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