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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언론의 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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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느 날 평론가 김윤식이 백철 선생 서재에서 책 몇 권을 빌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 후배가 다시 꾸민 문학사에는 책 속의 지식을 빌려 준 선배의 지식 일부가 무참히 해체되어 있었다.

발전적 해체였고 문명의 행진이었다. 김현이 이어령의 비평을 추락시키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오독(汚瀆)의 시비는 바통에 바통을 이어받는다. 누가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모두가 오독이고 해체다. 전후세대의 우상이었던 이어령은 선배 조연현을 공격했고, 조연현은 선배 백철의 글에 흠집을 냈다.'

한국문인협회가 최근 발간한 '문단유사(文壇遺事)'에 실린 원로평론가 김영수(金永秀)의 '비평전국시대의 휴머니스트 백철 선생'이라는 글의 일부다.

그래도 문단은 여유와 아량이 남아 있는 동네인가보다. 같은 책에서 평론가 임헌영(任軒永)은 1920년대에 국민문학파와 프로문학파로 갈려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무애(无涯) 양주동(梁柱東.1903~77)과 팔봉(八峯) 김기진(金基鎭.1903~85)이 76년에 만나 옛일을 회고하는 모습을 보고 받은 감동을 소개했다.

양주동이 "내 솔직한 고백이지만 나는 그냥 재주로 논쟁을 했는데 팔봉은 뭔가 있었어요. 사회주의니 민족주의니 자본주의니 하고 말입니다"라고 고백하자 김기진은 "우리는 그때 아주 신사적으로 하지 않았습니까. 요새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린 그때 싸우면서도 아무런 유감이나 인신공격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그제 국정연설에서 "몇몇 족벌언론으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아왔고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언론의 '부당한 공격'의 피해자라면 盧대통령이 존경하는 링컨을 빼놓을 수 없다. 대통령 재임 시절 독재자, 반역자, 괴물 같은 사람, 원숭이를 흉내내는 사람, 가증스럽고 추하고 야비한 사람 등 온갖 험한 말로 매도당했으니까.

그는 "미국의 공직을 불명예스럽게 만든 가장 간교하고 정직하지 못한 정치가"로 묘사되는가 하면, 뉴욕의 한 신문은 "링컨은 동물학적으로 볼 때 너무 진기하므로 그를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링컨은 시종 의연했고 유머와 금도(襟度)를 잃지 않았다. 그를 터무니없는 말로 공격하던 신문들 대부분은 그 후 흔적조차 못남기고 사라졌다.

노재현 국제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