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나라 스크린 데뷔작 '오 해피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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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나라의 스크린 데뷔작 ‘오! 해피데이’는 올초 개봉해 전국 관객 4백50여만명을 동원한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여러 모로 닮았다. ‘엽기적인 그녀’와 ‘가문의 영광’으로 이어진 ‘엽기녀’ 캐릭터에 부유하고 잘생긴 근육질의 남자 주인공,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몸과 말로 부딪치면서 파생되는 폭소까지.

'동갑내기…'의 홀어머니 슬하 치킨집 딸과 으리으리한 부잣집 망나니 아들 커플은 이 영화에선 택시 기사를 아버지로 둔 여상 출신 여주인공과 국제적 리조트 클럽의 잘 나가는 두뇌의 만남으로 바뀐다.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서로의 환경 차에 비현실적으로 '쿨'한 것도 쏙 빼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동갑내기…'가 주인공들의 알콩달콩한 대사발로 영화를 지탱해 나간다면 후자는 장나라의 기존 이미지와 개인기에 좀 더 기댄다는 점이다. 장나라의 표정과 목소리는 이미 그 자체로 상품이 돼버렸다.

3억원이라는 거액의 개런티를 주고 장나라를 캐스팅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깜찍하고 발랄하면서도 되바라지지 않고 때가 안 묻은 듯한 장나라의 고유한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장나라 개인기에 의존

공희지 역을 맡은 장나라의 연기는 가요대상.연기대상에 이어 신인연기상을 노린다는 그녀의 욕심이 허황되게 들리지 않을 만큼 괜찮다.

초반에는 다소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금세 자신의 페이스를 찾는다. 현준의 방에 몰래 들어갔다 커튼 뒤에 숨은 희지가 현준의 체조에 맞춰 당황해하다 베란다에서 떨어져 배추 씻는 통에 빠진다거나, 치질 수술 뒤 노래방에서 엉덩이를 두드리는 춤을 추느라 고생하는 에피소드 등은 확실히 장나라를 기용했기에 성공한 장면들이었다.

장나라의 극대화, 다시 말해 장나라와 공희지의 동일시는 이 영화의 흥행 포인트인 동시에 최대 급소이기도 하다. 이 '명랑소녀'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데 무게중심을 두다 보니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이 매끈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연애 작전의 일환이라고는 해도 희지가 '갯벌을 살려내라'며 환경 운동에 앞장서고 현준은 이에 감명받아 환경친화적인 리조트 개발을 역설하게 된다는 식의 설정은 억지스러워 보인다.

고깃집 여주인으로 카메오 출연한 김수미(이 대목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웃긴다)를 제외하고는 김해숙.장항선.정다혜 등 희지의 가족들은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질질 끌려간다는 인상이다.

***어색한 결말 등 아쉬움

특히 한강에 빠진 희지를 현준이 인공호흡으로 살리는 결말에 등장하는 뮤지컬 장면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때문에 이 영화는 장나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지만 '노팅 힐'이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처럼 남녀 관계, 나아가 인간 관계의 본질까지 묘파하는 정통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실망스러울 가능성이 크다.

온가족이 합심해 딸을 잘난 남자한테 시집보낸다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느 할리우드 신데렐라 스토리와 너무나도 닮았지만 설득력은 한참 떨어진다.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라면 적어도 보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달콤하게 속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TV 드라마 작가 출신 윤학열 감독의 데뷔작. 1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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