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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방송·가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올해는 한국방송 50돌의 해다. 77년의 방송계는 반세기를 되돌아보며 보다나은 발전을 위해 반성과 노력을 기울인 해이기도 하다.
각 방송국들은 새로운「프로그램」개발에 힘을 쏟아 각국이 독특한 개성을 되찾았으며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위해 각종 「다큐멘터리」「프로그램」·탈 「스튜디오」제작등의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당국의 규제와 시간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드라머」는 여전한 인기로 항상 시청율 상위「그룹」을 차지했었다.

<방송극 규제>
방윤은 6월일부 「드라머」들이 윤리에 어긋나고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방송극방송기준」이란 것을 마련,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무분별한 애정관계 ②가족간의 갈등 ③지나친 폭력 ④사치스런 무대장치지양등 6개항목의 이 기준은 방송국측과 많은 작가들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작가들은 「드라머」의 질향상과 내용을 건전화한다는 목적은 좋으나 자칫 방송극을 위축시키고 무미건조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그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작가들의 거센 반발때문인지 「드라머」는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 없이 방영됐고 방윤도 이 기준에 저촉됐다해서 말썽을 삼은「드라머」는 한편도 없었다.

<코미디물의 수난>
10월 문공부는 저속하다는 이유로 TV에서「코미디·프로」의 전면폐지를 발표했다.
그뿐 아니라 「코미디언」들의 타「프로」출연도 금지해「코미디언」들과 시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러나 이 조처는 곧 완화되어 1개국 1「프로」만 방영키로 했다. 이를계기로 각국은「포맷」내용을 바꾸어「코미디」의 질향상을 꾀하기도 했다.

<해외제작붐>
올해는「드라머」의 해외 제작이「붐」을 이뤘다.
7월 TBC-TV의 『추적』(일본·「홍콩」)을 비롯해 KBS-TV의 『유럽특급』(프랑스·스위스), MBC-TV의 『타국』(일본) 등이 뒤를 이어 해외제작에 열을 올렸다.
TBC-TV는 11월 또 한차례의 해외제작(일본·대만)을 가져 시청자들의 호평을 샀다. 우리나라 TV「프로」의 해외제작은 보도특집등이 고작이었고 「드라머」의 경우는 기술·장비·출연인원등 엄청난 제작비등으로 엄두도 못냈던 형편이었다. 「스튜디오」를 벗어난 해외제작은 안방극장의 새로운 활력소 구실을 단단히 했다.

<비평활동>
다른 문화분야에비해 대체로 잠잠했던 비평활동이 비교적 활발했던것도 올해였다.
방송 논쟁의 작가 한운사씨가 방송평론가들에게 8개의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됐다. 여기에 대해 TV주평을 쓰는 정일몽씨와 손룡씨가 평자의 입장에서 반박했고 여기에 작가 조남사씨까지 참여, 논쟁의 열기는 한동안 계속됐다.
방송계에선 이런 논쟁은 방송의 질향상에 크게 도움이 됐다는 의견들이다.

<가요계동향>
올해의 가요계는 두드러진 「히트」곡도 눈에 띄는 신인가수의 등장도 없이 조용한 침묵속의 한해였다,
이것은 신인 가수의 성패를 좌우하는 방송국이 신인기용을 꺼리고 신인 탄생「프로」마저 없어져 가수의 세대교체는 더욱 어렵게 됐다. 따라서「스타」급 가수가 나타나지 않은 대신 「스타」의 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이 올 가요계의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다만 올해 TBC가요대상에서 여자가수상을 수상한 혜은이양과 신인부문의 선우혜경양은 큰 수확의 하나이다.

<비가수들의 활동>
정소녀·당복순·최미나양 등 「탤런트」·배우·「코미디언」·「모델」·성우·작곡가등 비가수들의 가요활동이 활발했던한해였다.
이들은 평소의 인기를 배경삼아 연예활동의 폭을 넓혀보자는 욕심도 있긴하지만 최근 몇년동안 신인가수 「데뷔」의 길이 막히면서 새목소리를 찾는「팬」들의 취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클래식음반붐>
TV가 「골든·아워」에 「클래식·프로」를 늘린 때문인지 「클래식」음악이 대중가요에 못지않게 「붐」을 일으켰다.
「디스크」판매량도 상당히 늘어나 각 「레코드」회사에선 「클래식」음반 출반에 힘을 쏟아「클래식」음악인(작곡가 장일남씨와 「테너」 엄정행씨)의 전속제도가 생기기도 했다. 공륜의「클래식」「레코드」심사량도 76년 전체심의량의 7%이던 것이 올해는 두배가 넘는 15%로 늘어났다. <김준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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