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物議[물의]

중앙일보

입력

사령운(謝靈運)은 중국 남북조(南北朝)시대의 산수시인(山水詩人)이다. 당시 제대로 문학적 표현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산수자연의 아름다움을 시의 주제로 삼아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런 그의 증손자로 사기경(謝幾卿)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매우 영민해 신동(神童)으로 불렸고, 물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남조(南朝)시대는 왕조의 부침이 심하고 사회 혼란 또한 극에 달한 때였다. 그런 탓인지 양(梁)나라 관리로 있던 그는 일찍부터 정치에 뜻을 잃고 술 마시는 일이 많았다. 또 성격이 대범해 조정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았다.

하루는 잔칫집에 갔다 오다 술이 별로 취하지 않았음에도 마침 술집이 보이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판을 크게 벌였다. 그 마시고 떠드는 풍경이 얼마나 요란했던지 많은 사람이 사기경 일행을 빙 둘러싸고 구경을 할 정도였다. 그래도 사기경은 전혀 동요됨이 없었다. 그런 그의 태도를 양 무제(武帝)가 좋아할 리 없었다. 사기경은 결국 관직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무제가 그를 지방의 토벌군에 참여시켰다가 싸움에 패한 것을 이유로 면직시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제하기 좋아하는 관리들이 술을 들고 그를 찾아왔기에 그의 집은 늘 떠들썩했다고 한다.

마침 친한 벗 유중용(庾仲容) 또한 파직돼 낙향하자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기분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했다. 때로는 덮개가 없는 수레를 타고 교외 들판을 노닐었다. 당시 뚜껑이 없는 수레는 죽은 사람이 타는 것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개의치 않고 술에 취하면 큰 방울을 흔들며 조가(弔歌)를 부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평판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二人意相得 竝肆情誕縱 或乘露車 歷游郊野 不屑物議). 여기서 ‘물의(物議)’라는 말이 나왔다. 물의는 세상 사람들의 평판이나 뒷소문을 말한다. 지금은 주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공인(公人)이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 사과할 때 보통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말을 많이 쓴다. 최근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부적절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고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평소 수양이 드러난 것이라고나 해야 할까. 답답할 뿐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