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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층 평양 아파트 붕괴 … 마식령 속도전이 부른 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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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7일 붕괴 참사 현장에서 차희림 평양 인민위원장이 유가족 등에게 사과하고 있다. [AP·노동신문]

건설기간 단축을 위해 북한 김정은이 내세운 ‘마식령 속도’가 끝내 참사를 빚었다. 정부 당국자는 18일 “평양 평천구역 안산1동에서 지난 13일 오후 23층 신축 아파트가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해 상당한 숫자의 주민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사고 장소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집무실이 있는 중구역에서 2㎞가량 떨어진 곳으로 최근 고층 아파트 건설이 한창 진행됐다. 당국자는 “사고가 난 아파트 한 개 동에는 모두 92세대가 완공 전 입주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한·미 정보당국은 대북 감청과 인적 정보망인 휴민트(Humint·Human+Intelligence)를 통해 사고를 파악했고, 위성촬영 등을 통해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소식통은 전했다. 통일부는 위로전문 발송 등 관련 대책을 검토하기로 했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사고발생 사실을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참사 닷새 만인 18일 “평천구역 건설장에서 주민들이 쓰고 살게 될 살림집 시공을 되는 대로 하고, 그에 대한 감독통제를 바로 하지 않은 일군(간부를 의미)들의 무책임한 처사로 엄중한 사고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났다”고 보도했다. 또 “국가적인 비상대책기구가 발동됐다 ”고 덧붙였다.

책임자로 꼽힌 인물들로 오른쪽부터 김수길 평양 당 책임비서,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선우형철 내무군 소장, 이영식 평천구역 당 책임비서. [AP·노동신문]

 김정은은 사고현장을 찾지 않았다. 대신 사고 아파트 건설공사를 맡아온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우리의 경찰청장에 해당) 등을 17일 파견해 사과 모임을 열었다. 최 부장은 유가족과 주민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사고를 발생시킨 데 대해 반성한다”고 밝혔다.

 노동신문은 18일자 4면에 모임 소식을 사진과 함께 전했다. 구체적인 사상자 숫자는 밝히지 않았고, 현장 사진도 공개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평양시 한복판에서 참사가 발생해 소문 확산을 차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공개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평천구역이 중구역·보통강구역과 함께 평양의 특권층 거주지역이란 점 때문에 각별히 챙겼을 것이란 지적이다. 소식통은 “사고 아파트는 북한 당국이 재정확보를 위해 수만 달러의 현금을 받고 자본주의식 분양을 했던 곳”이라며 “노동당과 군부 등 고위층 직계가족과 신흥 자본가들이 집단 거주하다 피해를 봤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참사 원인으로는 2012년 초 김정은 집권을 계기로 부쩍 강조된 밀어붙이기식 건설방식이 꼽힌다. 평양 만수대지구에 고층아파트 2700세대를 1년 만인 2012년 6월 완공한 김정은은 지난해 건설현장의 ‘속도’를 재촉했다. 6월 호소문을 통해 12개 슬로프 규모의 마식령스키장을 연말까지 무조건 완공하라고 촉구하면서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 공로자를 위한 위성과학자거리와 김일성대교육자 살림집을 각각 1000세대 규모로 지을 것도 강조했다. 노동신문은 참사를 다룬 18일자에도 1면에 위성과학자 아파트 건설현장 사진을 싣고 “새로운 진군속도를 힘있게 과시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군 병력과 내무군을 대거 투입하고 자재·장비를 우선 지원했다. 공사기한을 맞추지 못하면 가차없이 해임·강등하고, 모범을 보이면 포상을 줬다. 대북 소식통은 “시멘트와 철근 부족에다 한겨울 무리한 콘크리트 공사 등으로 부실공사가 됐다는 점에서 예고된 참사”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마식령 속도를 “100년, 500년 후에도 손색없게 설계하고 창조해나가는 속도”라고 주장해 왔으나 설득력을 잃게 됐다. 김정은이 최부일 부장 등 사과 모임에 내보낸 ‘건설책임 5인방’을 처형하는 극단적 조치를 취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이영종 기자

◆마식령 속도=마식령스키장 최단기 건설 지시를 계기로 김정은이 제시한 일종의 노력경쟁운동. 김일성 시기 ‘속도전’이나 ‘천리마운동’의 변형으로, 북한은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속도”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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