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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저 소위의 한국 내 조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 하원 「프레이저」 소위가 조사관을 한국에 보내 다름 아닌 「한국의 비행」을 조사한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어쩌다 우리 외교가 이렇게까지 되었나 하는 한심스러움과 함께 「프레이저」 소위의 방자한 태도에 울분을 금할 수 없다.
「프레이저」소위가 잊을만하면 한차례씩 한국 청문회란 이름으로 반한 「캠페인」을 벌여온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최근에는 손호영이란 자를 회유해 조국을 배신하도록 만들어 청문회를 벌이기까지 했다. 「프레이저」 소위의 그 동안의 활동은 미 의회의 다른 활동과도 판이했다.
예컨대 하원 윤리위 같으면 「로비·스캔들」 조사와 박동선의 도미 증언이란 뚜렷한 활동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그에 비해 「프레이저」소위는 한국의 인권, 박동선 사건, 한국 기관원의 미국 내 활동 등 한국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이면 모든 것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굳이 「프레이저」 소위의 특정 활동 목표를 따진다면 반한 그 자체가 활동 목표가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의회가 국제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 단체도 아닌 미국의 헌법 기관으로서 이렇게까지 어느 특정 외국에 대한 반대만을 목적으로 활동할 수가 있는 것일까. 백보를 물러서서 그러한 반한 「캠페인」을 미국 국내에만 국한한다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과 한국에까지 와서 반한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다름 아닌 「한민통」 조직원들을 만나 정보를 수집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민통이 반한 활동만을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인 이상 그들로부터 나오는 정보가 어떠하리란건 뻔한 일이 아닌가.
그러한 사정을 충분히 알면서 「프레이저」소위가 한민통을 유력한 정보 수집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것은 한국 정부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라고 봐야 한다.
더구나 주권 국가인 한국에까지 와서 바로 한국의 「비위」를 조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니 그들은 한국을 미국의 속방이나 피의자쯤으로 생각한다는 말인가.
일반적이거나 구체적인 사법 공조 협정이 없이 일국의 조사 활동이 타국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은 국제법의 기초에 속한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 공개적으로 「조사」 운운하고 나온다는 것은 대국주의적인 오만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대국주의적 발상이 아니라면 어디 한번쯤 소련이나 중공에 대해 그곳의 인권 상황을 조사하겠다고 나서 보라.
「프레이저」 소위는 「프레이저」의원 개인의 정치적 공명을 위해 우방에 대해 별의별 무리한 행동을 다한다고나 하자.
그러나 우리 외교 당국은 어떤 생각으로 하원 조사반이란 사람들에게 「비자」를 발급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국 의회가 한국 내에서 우리 정부의 의사에 반해 한국인을 상대로 조사 활동을 한다는 것은 불쾌라는 차원을 넘어 국가의 주권과 체통에 관한 문제다.
그 「비자」 발급 과정에서 미국 측이 목적을 감추었기 때문이면 「비자」를 취소하거나 조건을 붙이는 것이 마땅하고, 우리측의 부주의에 의한 것이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지금이 한미 관계에 있어 중요한 고비인 것이 분명하다면 외교 역량도 그에 대처할 만큼 가다듬어 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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