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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무역 정책의 전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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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금융 통화 정책은 최근 원칙을 버리고 현실에 순응하려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김 재무는 당초 연율 28%선의 통화량 증가 목표를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 5백만원 이상의 금융 기관 대출을 하나 하나 직접 점검하기까지 했으나 이제 방침을 바꾸어 연말한도나 증가율에 구애받지 않고 탄력적인 통화 관리를 해나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통화량 증가율 40%>
11월말 현재 통화량 증가율이 연율 40%선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만큼 김 장관의 언명은 이제 통화 정책이 사실상 관리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 현실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국제수지의 급격한 호전에 따라서 파생된 해외부문의 통화 창출 효과가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단을 신속히 찾아내는데 미흡했었던 점을 주목할 필요는 있다. 사태가 상당히 진전된 이제 와서야 해외 부문의 통화 증발 억제책으로 D/A, 「유전스」 수입을 견제하고 수입을 촉진하는 시책을 펴나가겠다는 것이지만, 앞으로 국제수지의 흑자 기조가 정착할 수 있다는 판단에 자신이 있다면 차라리 이제 본격적으로 국제수지 조정을 통한 내외 균형의 확보책을 추진하는 것이 정도가 아니겠는가.
이와 연관해서 정부가 78년 무역 계획에서 1백26개 품목의 수입을 자유화했음은 주목할 만하다. 비록 자유화된 것은 기계류와 원자재에 한정된 것이라고는 하나 이제까지의 기준으로 볼 때 매우 대폭적이라 할 수 있다.
정부 당국의 이러한 방향은 싫든 좋든 한국 경제가 지향하지 않을 수 없는 진로이기는 하다.
아직도 우리 나라의 무역·외환 정책은 수출 촉진과 수입 억제를 기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내외 경제 여건의 변화로 이런 정책 기조의 선회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외환 수지의 호전에 따른 외자 자산의 급격한 증대는 통화 증발·물가 상승·설비 투자 저조 등 대내외 균형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국내 산업과의 마찰 해소>
국제 경제 환경의 정화도 한국이 계속 직접 보호의 장벽 안에서 안주하는 것을 허용치 않게 하고 있는 요인이다.
산업 정책적인 면에서도 국제화 시대에 대비하여 국내 산업을 점차 개방 체제로 이행, 국제 경쟁력을 배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물가 안정이나 지속 성장을 위한 설비 투자의 확대를 위해서 일방적 외환 흑자와 보유고 누증은 소망스럽지 못하다.
따라서 이번 직접적인 수입 제한의 철폐 조처는 앞으로 개방 체제로의 이행 과정에서 어차피 겪어야할 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또 이를 시발로 계속 개방 폭을 넓혀 가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수입의 개방은 필연적으로 국내 산업과의 마찰을 가져올 것이다. 수입 개방의 확대를 국내 산업 보호와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국내 산업 보호는 이제까지와 같은 전반적인 것보다 비교 우위 원칙에 입각한 선별적인 것이 소망스러울 것이다. 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술적인 방안으로 국제 경쟁력의 강화 촉진을 위해 수입 개방 예시제 등의 활용도 생각해 볼만하다.
그러나 수입 개방을 확대 하는데 있어선 현재의 외환 수지나 보유고가 과연 기조적·장기적인지에 대한 깊은 검토가 선행돼야겠다.
최근의 외환 누증은 한국의 국제 경쟁력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중동「붐」·단기외채의 증가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감안해야 할 것이다.
금년 하반기 들어 수입 인증액이 수출 신용장 내도 보다 훨씬 높은 「템포」로 늘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60년대 후반기에도 대폭적인 수입 자유화를 했다가 그 후의 외환 위기로 크게 후퇴한 경험을 거울삼아 이번 수입 개방 확대엔 시행 착오가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안정과 성장의 적정 조화>
국제수지 조정 수단으로서 환율의 조정과 물량의 조정, 외환 정책의 조정 등이 거론되는 한편, 과잉 유동성 수습책으로서의 역 금리제 시행 등 다양한 현상 타개 안이 각계에서 제시되고는 있으나 그 어느 방안도 현실의 벽에 부닥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 때문에 이 시점에서 깊이 검토해야할 과제는 77년 말 대책으로서의 경제 정세 판단이 아니라 78년부터 전개할 정책을 위한 정세 판단이라는 차원에서 정책 수단을 찾아내겠다는 자세라고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한 달 동안의 통계적인 실적이 아무런 뜻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 경제의 본질적인 동향에 어긋나는 제도를 수정하는 한편으로 그 부작용을 완화시키면서 안정과 성장의 적정한 배분을 도모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오늘의 국제수지 동향으로 보아 수입 자유화 폭을 늘리고, 외화 예치제를 강화하며 단기신용 도입을 억제하는 등 조치를 강력히 시행하여 해외 부문의 통화 창출 효과를 상대적으로 감쇄 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조정만으로 흡족한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 물을 때 반드시 긍정적인 답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재정 수요의 계속적인 팽창과 고율 성장을 위한 고율 투자 정책의 지속을 전제로 하는 한, 앞으로도 통화 관리에는 많은 애로가 도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외 부문의 통화 증발 효과를 수입 촉진·단기 신용 조정 등으로 감쇄 시키는 동시에 안정과 조화하는 성장 수준에 대한 기본적인 검토가 통화 정세를 정상화할 수 있는 계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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