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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 갇힌 그들, 일탈을 꿈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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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한 명의 20대 청년을 알았다. 그와 '당당'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될지 몰라서 아주 괴롭다. 그래서 자살하려고 한다"(認識一位二十多歲靑年, 在他與 '唐唐' 間不知道如何選擇才好, 十分困擾, 所以要自殺).

아시아 영화계의 스타였던 홍콩의 장궈룽(張國榮.46.사진) 이 지난 1일 밤 투신 자살을 하면서 남긴 유서의 한대목이다. 홍콩 언론들은 2일 그의 자살을 '동성애를 둘러싼 삼각관계의 고통'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또 "지난 1년간 너무 힘들었다. 더 이상 참아낼 수 없다"며 우울증에 사로잡힌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유서에 나오는 '당당(唐唐)'은 장궈룽이 17년간 동성애 관계를 맺고 동거까지 해온 은행원 출신의 '당학덕'이라는 남자다. 결혼한 적이 없는 장궈룽은 1997년 공개석상에서 당씨에 대해 "어머니를 빼곤 내 일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장궈룽이 최근 20대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의 갈등은 극대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의 투신 자살 이유가 유서에 나온 대로 단순히 동성애 때문이었을까. 비록 그가 2000년 시사주간지 '타임'에 자신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이라고 밝힌 바 있고 최근 사랑의 갈등에 시달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죽음이 다 설명되진 않는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고, 부모의 이혼이 어린 시절 내게 가장 큰 슬픔이었다"는 내용의 글을 써 올린 바 있다.

특히 자살하기 얼마 전 직접 쓴 노래 가사에선 "꿈 속에서도 공포감을 자꾸 느낀다. 토할 지경이다"라고 밝혀 불안한 정신 상태를 엿보게 했다. 유서에서는 "평생 나쁜 일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도 탄식했다.

일반적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스타가 자살의 유혹에 더 쉽게 빠진다고들 한다.

1994년 4월에 권총으로 자살한 올터너티브 록그룹 '너바나'의 리드싱어 커트 코베인이 그렇고, 전설의 여배우 마를렌 디트리히는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했고, X재팬의 멤버 히데의 경우는 목을 매 죽은 채 발견돼 자살논란을 빚었다.

국내에서는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이며 '사의 찬미'로 유명한 윤심덕이 연인 김우진과 겐카이나다(玄海灘)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정신과전문의 김정일 박사는 "유명해질수록 허무감도 더해지고, 정신적 에너지를 발산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솟아나 그를 해소할 또 다른 대상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스타들에게서 각종 스캔들과 일탈 행위가 나오는 것도 에너지를 발산할 특별한 일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궈룽의 경우 올초 대만에서 개봉한 공포영화 '이도공간(異度空間)'의 주연을 맡아 빌딩에서 투신 자살하는 정신과 의사 역할을 맡았는데, 영화 속 장면처럼 실제로 자살해 더욱 충격적이다.

또 영화 '해피투게더' '패왕별희' 등에서 남자를 사랑하는 역을 맡은 것이 유서의 내용과 맞물려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김박사는 "장궈룽의 경우 삼각관계가 해결되었다 해도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만족을 위해 또 시달리고 괴로워했을 것"이라면서 "결국 유명 연예인들은 다양한 모험과 도전을 통해 내면의 갈등을 스스로 극복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장궈룽의 팬들은 "만우절의 거짓말 아니냐"며 충격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장궈룽은 그간 출연한 많은 영화에서 우수(憂愁)에 젖은 눈빛 연기가 일품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서울=배영대 기자

<바로잡습니다>

4월 3일자 22면 '유명 스타의 자살' 기사 중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자살한 곳은 대한해협이 아니라 겐카이나다(玄海灘)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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