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다…아니다 상위 폭로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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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폭리와 부조리를 들춰내는 폭로선풍이 국회에 일고 있다.
잇단 야당의 폭로발언으로 여권은 대응책까지 마련하고 있고 자칫 정치문제로 발전될 조짐마저 드러내고 있다.
지금껏 나온 것만 해도 △축항과 관련한 전직장관 정보제공 설(김수한 의원) △현대건설 부조리(박병배 의원) △수산개발공사 외화도피 설(김상진 의원)을 비롯해 농지70만평 소송부조리·창원지구토지보상시비·자동차폭리·「아파트」폭리 등등 대소 50여종.
대기업이라면 대부분 상장품목으로 올랐으며 거명된 명사도 「회장」「사장」, 외국업체도 「아이젠버그」 「AMC」 합작회사 등이 올라 국내외가 망라돼 있는 것이 특색.

<의원발언 진실 아닐 수도>
영일 축항예정지 정보누설과 이에 따른 29만평 헐값 매입 폭로에서는 땅을 산 신라교역사장 박준형씨 형제와 매부인 전 농림장관 정 모씨까지 거론한데다 박씨 선친의 묘까지 『신라왕릉을 무색케 하는 호화분묘』라고 사생활영역까지 공격. 수개공 문제를 다루면서 김상진 의원도 「5억원 짜리 아방궁」 등도 거론.
P모 의원은 『국민을 해치는 큰 도둑』 『불한당』이란 말을 써가며 『조져주십시오』라고 어느 특정인을 맹타.
집중타된 「아파트」폭리문제에 떠오른 업체를 보더라도 삼익·「라이프」·한신공영·괴정(부산) 등 10여개. 어느 기업체는 외채도피·탈세 등으로 내무위에서, 8천만원에 인수한 항공대리점은 교체위에서, 대청「댐」수십만 평 매입은 건설 위에서 돌려가며 맞은 「케이스」.
S모 의원은 결산 때 질문한 농지70만평 소송문제를 거듭 거론, 28일에는 유인물을 만들어 입맛당길 재탕물로 다시 배포했고 황낙주 의원(신민)은 창원공업단지 염가수용문제를 「진정서」접수 때 한 탕, 현지조사 후 보고서제출 때 한탕 내무위 질문과정에서 또 한 탕 등 모두 동일사건을 전후 세 탕이나 해치워 연타.
폭로문제와 관련해 28일 농수산위에서는 수개공의 외화도피와 대통령지시공문 변조혐의에 대한 신민당의원들의 조사위 구성요구로 개의시간을 늦춰가며 간담회. 그러나 야당이 조사위를 당장 구성하자고 주장한 반면 여당 측은 10월말까지 기다리자고 대립하여 거듭 정회.
여·야는 2차 간담회에서 결국 부정척결에 합의했으나 31일까지 사직당국의 조사를 지켜본 후 조사위 구성문제를 결정한다고 조정, 정오가 넘어서야 질의를 개시.
『수산개발공사가 외화를 도피시켰다는 내용이 신문에 보도된 뒤 미수출입은행의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국회에서 특정개인회사에 대한 부정을 폭로하기 전에 정부에 알려주면 조사결과에 따라 공표해도 늦지 않다. 의원들이 진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일을 미리 폭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28일 국회경과위에서도 남덕우 부총리가 수산개발공사의 외화도피 설을 방어하고 나서면서 의원「폭로」발언에 견제구.
그러자 이기택 의원(신민)이 들고일어나 『국회의원이 수사관이 아닌 이상 간혹 잘못된 정보를 들을 수도 있다』고 단서를 단 뒤 『남 장관이 말미에 한 말은 국회의원을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역습. 김유탁 위원장은 『그만하고 답변을 계속하자』며 만류.
그러나 유치송 의원이 『위원장은 왜 자꾸 그러시오』라며 답변을 제지했고 이 의원도『국회는 망신을 당해도 된단 말인가』고 고함.
결국 고흥문 의원이 『특정 업체를 가능한 한 거론 않으려는 생각은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의원이 자신이 있고 소신이 뚜렷하면 할 수도 있다. 국민들의 고발을 대변하는 게 국회의원 아닌가』고 말한 데 대해 남 장관이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고 부드럽게 후퇴해 폭로발언「시」「비」공방전은 일단락.

<진정서·투서 등을 단서로>
폭로거리를 입수하는 경위도 갖가지. 「아파트」부정을 주로 터뜨린 모 의원은 이권을 놓고 경합하다 탈락한 업자한테서 상당한 정보를 입수했고 관계부처의 퇴직자제보, 익명의 진정서·투서도 좋은 단서가 됐다고 주장.
그러나 증거로 보강되지 않은 제보를 그대로 발언하기엔 정부나 피해당사자로부터 반격을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비서들이나 비밀정보망을 풀어 현지답사를 하는 게 대체적인 관례.
더러는 증빙서류·사진 등 완벽한 자료를 제공하는 일도 있다는 얘기. 김수한 의원(신민)은 고향에 성묘 갔다가 친척들로부터 양포리 축항예정지 사전누설을 캐냈다고 했고 모 야당의원은 여당의원이 갖고 있는 「극비」정보를 인수받아 대타했다는 후문.

<예방·저지할 수 없어 고민>
유정회는 야당의 잇단 폭로가 『결국은 정부·여당에 피해를 준다』는 분석아래 다각도로 대응책을 모색. 그러나 면책특권을 가진 의원의 원내발언을 「예방」하거나 「저지」할 수는 없어 고심.
27일에는 이영근 총무주재로 원내대책회의를 열어 『폭로내용이 허위일 경우 피해자는 보상받을 길이 없고, 정부·여당이 피해자가 되기 쉽다』고 결론, 정부나 고위층이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방안을 협의.
이 자리에서 오간 얘기는 △야당의 폭로를 당국이 인지, 수사를 벌이고 필요한 경우 발설의원을 참고인으로 소환, 결과를 밝힌다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고소를 하는 경우 △국회에서 문책하는 방안 등.
오준석 공화당부총무 『27일 정소영 전 농수산부장관이 「조용히 지내는 사람을 이렇게 매장할 수 있느냐」고 울면서 전화를 걸어봤더라』고 전언.
여권에서는 야당폭로가 상당부분 △묵은 사실의 재탕이거나 △과장 △사실무근으로 보고있고 한 두 간부는 『폭로 뒤에 다른 거래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경계론.
그러나 송원영 신민당총무는 『의원들의 정보부족으로 미흡한 감이 없지 않으나 폭로는 문제의 본질을 들춰내는 게 목적인 만큼 그런 대로 성과는 크다』고 자평.
고재청 대변인도 『그 동안 지적된 일련의 부정·비위사실은 현정권아래서 발생된 각종 부조리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 보다 큰 사건들이 교묘히 숨겨져 있다』고 주장하고 앞으로 계속 폭로발언이 있을 것을 예고.

<구멍가게까지 거론될 판>
일부 야당의원과 여권에서는 야당폭로의 근거에 대해 불신을 표명, 『투서·모함편지·진정서 따위를 그대로 발언하는 것은 의원품위의 문제』라고 비판.
정재호 유정회부총무는 『폭로발언 연발로 이번 국회에서 의원발언의 윤리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 같다』며 『업체비위를 건드리다보면 매상고 10만원의 구멍가게까지 국회에서 거론될 판』이라고 개탄.
결국 폭로는 근거의 확실성과 의원양식의 문제로 귀착되어야하며 기업체위주보다도 행정부 비정·정책부재 등 근원적인 병근을 파내는 것이 정도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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