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 특파원 요르단 암만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7면

요르단 수도 암만의 알마하타 버스터미널에서 2일 만난 이라크 소녀 아스라(10)는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뛰어다녔다.

이라크 바그다드까지 1천㎞의 먼 여행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곳에 사는 옛친구들을 곧 만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폭격이 심한데 겁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무섭긴 해도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다"며 웃는다.

아스라와 달리 어른들의 표정은 무겁다. 그의 할아버지 자말 야멘(65)은 "집 근처에도 미사일이 떨어진다고 하더라.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위험해도 친척들과 함께 있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그는 "바그다드에 도착해도 하루 먼저 출발한 아들과는 다른 집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폭격을 당하더라도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바그다드에 남아 있는 주민들 대부분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처럼 요르단에서는 전쟁터가 된 조국으로 돌아가는 이라크 역난민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암만의 이라크 대사관에는 입국 서류를 만들기 위한 이라크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40여만명의 요르단 거주 이라크인들 중 현재까지 6천7백명이 전쟁이 터진 뒤 이라크로 돌아갔다. 대부분 야멘 가족처럼 가족.친지들을 걱정해서다.

하지만 조국을 지키려고 귀국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바스라 출신의 가넴 라힘(27)은 "열두살짜리 막내를 포함한 여섯 형제가 침략자들과 맞서 싸우고 있어 거기에 합류하러 간다 "고 말했다.

이라크 난민에 대비해 요르단의 루웨이시드에 마련한 난민촌은 텅 비어 있다. 이라크로 가는 행렬만 이렇게 줄을 잇는다. 역난민 현상이다.

이라크 정부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이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장남 우다이가 제공한 바그다드행 무료버스가 지난달 31일부터 암만에서 하루 두대씩 떠난다. 후세인은 최근 일부 반체제 망명객들을 사면했다.

이 행렬에는 이라크인 출신이 아닌 아랍인도 적지 않다. 이라크의 타하 야신 라마단 부통령은 1일 아랍국가들로부터 6천명 이상의 자원자들이 이라크에 도착했으며 이 중 3천명 이상이 자살공격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만=이훈범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