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이 본 박찬호 투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한마디로 중상(重傷)이다. 큰 병에 걸려 있다는 말이다.

한참 좋았을 때의 투구폼과 거리가 멀다. 이전의 박찬호는 오른팔이 뒤에서 넘어오면서 최대한 릴리스 포인트를 길게 끌고 갔다. 지금은 볼을 놓는 지점이 너무 뒤에 있다. 공을 일찍 놓는다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
또 하체를 이용하지 못하고 손만 갖고 던지고 있다. 공을 잡아채는 느낌이 아니라 밀어서 던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되면 직구는 볼 끝의 움직임이 없고 커브는 공의 각(낙차)이 없어진다.

왼손타자는 공을 보기가 수월해져 마음놓고 때리게 된다. 오늘 상대한 다섯명의 왼손타자가 홈런을 포함해 6타수 4안타(4사구 세개)를 기록한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오늘 투구 가운데 2회말 2사 후 팀 새먼을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낼 때의 바깥쪽 낮은 직구 하나가 마음에 들었을 뿐 나머지는 함량 미달이었다. 그 한차례 제대로 던졌을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박찬호의 머리 속에는 타자를 변화구로 속여 범타를 유도하겠다는 생각이 가득 차있는 것 같다. 그러나 변화구로 속인다는 마음가짐은 손장난만 부채질할 뿐 투구에는 도움이 안된다. 아주 나쁜 버릇이 생겼다.

마운드라는 높은 곳에 서있으니까 그 '높이'를 이용해야겠다고 마음먹기 바란다. 오른팔을 글러브에서 꺼내 스윙을 시작할 때 팔꿈치의 위치를 의식적으로라도 높게 가져간다고 생각하면 공을 '밀지'않고 위에서 '때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른쪽 다리가 무너지는 단점은 조금 시정됐지만 공을 놓는 순간 오른쪽 팔꿈치의 위치는 너무 낮다.

<전 lg트윈스 감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