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이 맡던 ADD소장, 9년 만에 장성 출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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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군 기술 협력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군용헬기 ‘수리온’. 민간 출신인 안동만 소장이 재직했던 2006년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이 주도해 개발에 착수했다. 4축자동비행 조종장치, 3차원 전자지도 등 첨단기술이 장착된 수리온으로 전 세계 중형 헬기 시장의 30%를 확보한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중앙포토]

국방부는 12일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에 정홍용(육사 33기·예비역 육군 중장) 전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을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소장에는 한홍전(육사 32기·예비역 육군 중장) 전 육군 인사사령관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무기체계 연구 및 관리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산하기관장 자리가 모두 육군 예비역 중장에게 돌아간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재윤(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한국형 차세대전투기(KFX) 사업 등 현안이 산더미 같은데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은 예비역을 우대한 건 부적절한 인사”라며 “군(軍)피아(군 마피아) 내부에서도 주류인 육군 마피아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국방부도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해 인사 최종 단계까지 많은 고심을 했다고 한다.

 ADD는 국군 명품 무기라고 불리는 K9 자주포와 K11 복합형 소총 등 군 무기 연구개발에 앞장서 왔다. 이 때문에 2005년부터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인 출신이 소장을 맡아왔다. 2005년 임명된 ADD 내부 출신 안동만 소장을 시작으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출신 백홍렬 소장까지 10년 가까이 민간인이 맡아온 관례가 이번에 깨진 것이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민간 원장들이 맡은 이후 군이 무기 개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다”며 “앞으로는 무기 개발에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군 출신들의 목소리를 강하게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군피아, 특히 육군이 독식하는 산하기관장 낙하산 인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군 관계자는 “그토록 ‘별’을 달고자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명예도 있지만 전역 후 노후 걱정을 덜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방부의 산하기관은 ADD·KIDA·전쟁기념사업회·군인공제회·국방기술품질원·군사문제연구원 등 6개다. 이번 인사로 단체장 중 5개 자리를 예비역 장성이 맡게 됐다. 국방기술품질원을 제외한 5개 단체장 모두 육사 출신이다. 단체장뿐만이 아니다. 감사·사무총장을 비롯해 그 아래 각종 부서장도 영관급 이상 예비역들의 차지다.

 단체장에 이어 감사까지 예비역 출신들로 채워진 것은 더욱 비정상적인 구성이란 비판이 많다. 단체장은 관련 부처 출신 고위 공무원이 하더라도 감사는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에서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방부의 ADD·KIDA·전쟁기념사업회 등 주요 산하단체들은 모두 육군 예비역이 단체장과 감사를 맡고 있다. 김 의원은 “위계질서가 강한 군 조직에서 수십 년 지낸 육사 선후배끼리 감사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군의 전문성과 큰 관련이 없는 군인공제회의 각종 영리사업체들도 대부분 예비역 장성들이 대표이사나 사장 등을 맡고 있다.

 군피아 조직은 민간 방산기업으로도 확산됐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소속기관과 연관이 있는 영리기업에 취업이 제한된 고위 공무원 중 73명이 취업했다. 이 중 국방부 출신이 16명(군 출신 15명)으로 대통령실(21명)에 이어 둘째로 많았다. 대부분 LIG넥스원·삼성탈레스·대우조선해양 등 방산기업으로 진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5~2010년 국내 57개 방산업체에 취업한 직업군인(장교) 출신은 329명에 달했다. 특히 방산업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위산업진흥회의 부회장직도 예비역 장성에게 할당돼 있다. 현 부회장은 류우식(육사 28기) 예비역 육군 중장이다.

 2011년 김상태 전 공군참모총장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에도 군피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김 전 총장은 퇴역 후 방산업체를 설립한 뒤 20여 건의 군사기밀을 빼내 2004~2010년 미국 록히드마틴사에 제공하고 25억원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한 현역 장교는 “예비역이 직접 나서 접근 가능한 경로로 기밀을 빼내기도 하지만 주로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후배 장교에게 ‘술이나 한잔 하자’며 연락해 진행 상황을 알아낸다”며 “기수문화가 뚜렷한 군에서 현역이 선배를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예비역들의 마땅한 사회적 진출 통로가 마련되지 않은 사회 시스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군 출신의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군에서 예편하고 나오니 방산업체 외에는 갈 곳을 찾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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