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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상승기, 지금이 준비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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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권선주
기업은행장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기준금리 인상 등 그동안 풀렸던 통화를 회수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 기조가 변화될 것이 예상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뉴스가 넘쳐나서인지 오히려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 변화는 중국의 경기 둔화 가능성과 함께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두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에서 멀리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미국의 양적완화는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며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급격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시작됐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정책금리를 제로금리 수준까지 인하하는 것과 더불어 시장에 통화를 직접 공급하는 양적완화 조치도 취했다. 이후 5년 반 동안, 3차에 걸친 양적완화 정책으로 풀린 돈은 약 3조80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제로금리와 대규모 양적완화와 같은 비전통적이고 이례적인 정책은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이미 2013년 12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매월 850억 달러씩 채권을 매입하던 규모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네 번에 걸쳐 100억 달러씩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했고,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올해 10월께에는 양적완화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양적완화 축소가 끝나면 다음은 그동안 풀린 돈을 다시 회수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즉, 정책금리 인상이 시행될 것이다. 물론 양적완화 축소가 종료됐다고 바로 정책금리를 올리지는 않겠지만 미국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는 한 이르면 내년 중에는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정책금리 인상과 같은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 변화가 세계 경제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것인가? 양적완화 축소 과정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2013년 5월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벤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고, 이로 인해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인 바 있다. 이어 8월에는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해외자금이 이탈하면서 신흥국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됐다. 올 1월엔 아르헨티나와 터키가 금융위기 취약국으로 부각됐다.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과정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일부 신흥국들의 위기설이 나돌 것이다. 실제로 금융위기를 겪는 국가들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양적완화 축소 과정에서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앞으로 있을 정책금리 인상 과정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금리상승으로 인한 영향은 비켜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시장금리 역시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금리상승 폭이 상당히 클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시장금리가 상승한다면 이자부담 증가로 어려움을 겪는 가계와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는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 경제를 흔들 수 있는 위험요인으로 지적되어 왔지만, 지금까지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대출금리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리가 상승하면 다중채무자와 같은 취약계층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다. 2013년 기준으로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이자비용)이 100%가 안 되는 기업 비중은 대기업의 경우 29.1%, 중소기업의 경우 39.5%에 이른다. 가계와 기업의 부실 증가는 금융권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다시 가계와 기업 대출 감소로 이어지는 등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이자비용 상승은 기업들의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통화당국과 정부가 경제 주체들에 확실한 시그널을 주어 잘못 판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경제 주체들은 금리 상승이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가계와 기업들이 재무구조를 변경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막상 금리 상승기가 닥쳤을 때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지금부터 미리 준비해야 한다. 실기하면 위험이 증폭될 수 있다.

권선주 기업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