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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대「유엔」인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공산 측이 32차「유엔」총회 보충의제 마감일까지 한국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이번 총회에서 한국문제 토의는 없을 것 같다. 이는 지난 68년이래 한국문제의 탈「유엔」을 시도해온 우리에겐 환영할 일이다.
북괴의 한국문제 불상정 의도에 대해선 여러 갈래의 관측이 있으나 대체로 두 가지 분석이 가능하다. 세불리와 외교전술의 현실화다.
우선 지난 2년간의 정세로 보아 북괴가 도저히 재작년 30차 총회에서 서방·공산 양측 결의안이 모두 통과된 것 이상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적 측면이다.
또 하나는 북괴의 외교자세가 약간 현실적이 되어 가는 듯한 조짐이다. 예컨대 주한 미군철수와 한국의 고립화란 저들의 당면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유엔」의 토의보다는 미국과의 접근을 더욱 중시하는 듯한 형태다.
이러한 북괴 외교의 현실화란 측면은 경우에 따라「유엔」에서의 도전 이상으로 심각한 외교도전이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아무튼 사상초유의 이번 한국문제「유엔」불상정으로 우리와「유엔」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기회를 맞게 되었다.
「유엔」은 대한민국 수립의 산파였고, 북괴 남침 때에는「유엔」군을 파견해 공산침략으로부터 우리를 도왔다. 이 특수관계 때문에「유엔」의 구원자적「이미지」가 우리 국민들에게 뿌리깊이 심어졌다.
다분히 그러한 낭만적인「유엔」인식은 내년부터 매년 계속된「유엔」의 한국문제 토의의 무성과로도 아직 탈피되지 않고 있다.
우선 이러한 비현실적인「유엔」관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 그동안의 경험은「유엔」이 한국문제 해결에 무능력하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다. 비단 한국문제뿐만 아니라 분쟁의 점차적 해결이란 제일의적 임무수행에 전반적으로 무능했던 것이다.
이러한「유엔」에 우리가 한반도 문제해결을 기대할 이유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68년부터 한국문제의 탈「유엔」을 시도해온 것은 당연하며, 앞으로도 그러한 정책방향은 지속되어야겠다.
자연히「유엔」에 대한 낭만적인 기대나, 또 그 결의에 일희일비하는 풍조도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유엔」에 대해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한국문제 해결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고「유엔」을 보는 자세를 가리킬 뿐이다. 결코「유엔」의 다른 기능까지 도외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뭐니뭐니해도「유엔」은 국제활동의 중심으로서, 세계의 토론장으로서 국제협력을 증진하고 세계의 여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제3세계 국가가 1백47개 회원국의 다수를 형성하게 됨에 따라 분쟁의 평화적 해결기능은 크게 약화되었으나 국제협력, 우호관계의 촉진, 경제·사회적인 문제의 제기 및 해결에 있어선 여전히 큰 몫을 수행한다. 특히 최근에는 선진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개혁해 나가는 각종 운동의 중심체가 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러한「유엔」의 범세계적 활동에 계속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오히려「한국문제」때문에 소홀히 했던 여타의「유엔」및 산하 전문기구활동에는 더욱 정력을 투입할 수도 있으리라 기대된다.
그 경우「유엔」회원국이 아니라는 점이, 바람직한 한국과「유엔」관계의 정립에 있어 지속적인 난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난관을 해소하려다가 또 다시 한국문제의「유엔」제기를 촉발하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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