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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되는 정부은행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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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통화조절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금융기관의 여신운용에 대한 공부의 감독기능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 한은법·은행법 등을 개정키로 했다. 그밖에도 그동안 금융기관 운영에 있어 큰 불편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부문을 이번 기회에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지준계산방법의 변경, 유가증권 지준제도의 도입, 은행법 제15조 한도인 지보한도의 확대, 결산기일의 변경 등은 현행은행법의 취지가 경제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개정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들 실무적인 차원의 개선은 오늘의 경제현실로 보아 불가피하다고 일단 인정되는 것이나 그 중에서도 유가증권 지준제도의 도입이나 통화안정증권의 발행한도폐지, 지불보증한도의 인상은 금융 각 부문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움직임이다.
우선 유가증권 지준제도는 금융기관의 수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고율의 자금동결이 지속되어야 할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기된다. 「베넬룩스」제국에서 실시한 바 있는 이 제도는 금융기관의 국공채인수창구를 넓힐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높은 금리를 부담한 예금을 대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파생되는 은행손실을 메워주는 편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제도의 실시는 결과적으로 동원된 예금의 대민간여신은 앞으로도 계속 제한 받아야 하며, 그 대신 은행은 국공채를 인수하는 「프랑스」식 경영을 해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음으로 지보한도를 현재의 자본금의 15배에서 20배로 늘리는 것은 은행의 증자가 경제규모를 따라갈 수 없다는 판단에 기인한다.
원래의 은행법 제15조 한도가 오늘날처럼 변질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나마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없게 된 현실을 반영한다.
금융기관의 여수신은 늘어나는데 기업으로서의 능력은 늘어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은행법 제15조의 변질과정이다. 금융기관 주식이 인기를 갖지 못함으로써 증자의 길이 내용적으로 막혀 있고, 업적이 늘어나도 수지가 호전되어 내부축적이 이루어지기 힘드는 현실은 바로 우리 나라 금융기관의 정부은행화와 직결되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또 통화안정증권의 발행한도를 통화량의 10%이내로 유지하도록 한 것을 폐지하려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는 금융을 보다 철저하게 억제하려는 장치이다. 서독의 경우 정부의 중앙은행차입한도를 당해년도 예산규모의 10%이내로 법이 억제하는 것과는 그 취지가 정반대인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한편 은행감독원의 여신감독권을 강화시킨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매우 큰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은행감독원은 엄격히 말하면 은행법위반사항만을 다룰 권한이 있는 것이지,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서 여신행위자체를 규제할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문제점이다.
이러한 중대한 상황을 한은법 개정만으로 앞뒤를 맞추려 하는 것은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기왕 은행법을 개정하는 것이라면 구체적으로 금지사항이나 인허가사항을 추가하는 것이 체계상으로 옳다. 또 중앙은행 내부체제로 보아서는 여신운용의 유도도 집행부 소관이지 감독원 소관일 수가 없다. 감독원은 한은 집행부의 규칙과 규제를 금융기관이 지키지 않을 때 이를 시정하는 것이 한은법 체계로 보아서는 정도임을 주목해야 한다.
한은법·은행법개정의 불가피성은 충분히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부의 편리성을 위해서 정도를 이탈해서는 아니 될 줄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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