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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사퇴로 몰았던 서슬…미의회 파헤칠 「재워스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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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그는 미국에서 크기로 4번째 가는 법률사무소(풀브라이트-재워스키)의 거물변호사답게 천성이 사람들 모이는데 나타나기를 좋아한다. 「에드거·후버」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긴 얼굴은 언제나 혈색이 넘치고, 인상적인 큼직한 주먹코는 이 사람의 고집과 박력을 과시한다.
이만하면 미국에서 출세할 신체적인 조건은 갖춘 꼴이다. 거기다가 「리언·재워스키」는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게 머리가 수재급이다. 18세 때 법대를 마쳤다면 그 머리는 알아줘야 한다. 더구나 그가 출생하여 성장한 고장이 「텍사스」주라 그만한 두뇌에다 1924년 약관24세의 나이에 「텍사스」주 최연소변호사가 됐으니 후일 「워터게이트」특별검사가 되어 「닉슨」을 대통령자리에서 밀어내는 인물로 성장한 것이 하나도 놀라울 게 없다.
「재워스키」가 「토머스·오닐」하원의장과 「짐·라이트」하원민주당 원내지도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하원윤리위의 박동선사건 수석수사관으로 취임한 것은 미국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일면도 있다.
그는 말하자면 공화당의 대통령을 「처단」한 사람으로서 이제 민주당의 의회를 「심판」하는 자리를 인수했다. 흥미롭게도 그가 「워터게이트」특별검사가 된 것은 「닉슨」자신과 당시의 백악관 수석참모인 「알렉산더·헤이그」의 강경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이번에 그가 박동선 사건을 맡은 것은 그 사건에 스스로 관련됐다고 보도되고 있는 「오닐」의장과 「라이트」총무의 권고에 의한 것이다.
「재워스키」등장의 「아이러니」는 그 정도로 그치질 않는다. 「닉슨」의 권유로 「워터게이트」특별검사가 된 「재워스키」는 자기가 거느리는 검사들로부터 「닉슨」의 앞잡이로 의심을 받았었다.
그가 어지러운 머리를 식히고자 혼자 산책을 나갔을 때 그 거동을 수상쩍게 여긴 젊은 검사가 미행하기까지 했다. 그 젊은 검사가 바로 윤리위원회의 「재워스키」전임자인 「필립·래코바라」다. 「래코바라」는 「재워스키」가 능수능란한 막후조정으로 「닉슨」을 사임시키고는 「포드」로 하여금 「닉슨」을 사면케 했을 때 거기에 반발하여 「워터게이트」특별검사를 뛰쳐나와 일약 영웅이 된 사람이다.
아들과 아버지뻘이나 될 만큼 나이 차가 나는 「재워스키」와 「래코바라」는 인생여로의 결정적인 순간에 잠시 부딪쳤다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곤 하는 인연 같다.
「재워스키」의 취임으로 하원민주당 지도층은 자신들이 박동선 사건을 은폐하려 하고 있다는 혐의를 일단은 벗었다. 「재워스키」자신도 「무보수봉사」를 선언하고는 두 팔을 걷어붙이는 기세가 당당하다.
「대령」이라고 별칭되기를 좋아하는 「재워스키」는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이 사건 조사에서 악당이 발견되면 그가 하원의장이라 할지라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기자들에게 선언했다.
「래코바라」가 수석조사관일 때와는 달리 윤리위는 「재워스키」한테는 전권을 일임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원하는 자료와 증거는 윤리위가 얻어내야 하고, 그가 위원회의 회의를 요구하면 의원들은 군소리 없이 모여야 한다.
윤리위의 협조가 시원치 않다고 판단되면 「재워스키」는 하원본회의 표결을 요구할 수가 있다. 윤리위원회는 그를 마음대로 파면도 시키지 못한다.
박동선 사건 조사의 어려움은 하원이 하원의원들을 조사한다는 특수한 사정에 있다.「존·플린트」윤리위원장이 비판을 당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동료의원들의 부도덕행위를 감싸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고, 그것이 폭발한 것이 「래코바라」의 사임이다.
거기다가 사건의 열쇠를 쥐고있는 증인 박동선씨는 「런던」에서 미국 측의 손짓을 보고도 요지부동이다. 이런 두 가지 난관을 「재워스키」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주목거리다.
그는 금년으로 71세. 그러나 「뉴욕·타임스」지 사설이 적절히 지적한 것같이 그가 갈 곳이라고는 이제는 「역사의 장」뿐이고 잃을 것이 있다면 명성뿐이니까 힘이 닿는 데까지는 철저한 수사를 하리라고 기대된다.
그러나 「재워스키」검사는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동부의 학풍을 쐬어본 적이 없는 「텍사스」의 시골신사다.
그리고 그는 큰 기업들의 큰 사건을 맡아서 거물들을 상대로 하여 「텍사스」라는 거친 풍토에 알맞게 사건을 「올바르게」보다는 「훌륭하게」처리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그런 처리의 고전적인 예가 「워터게이트」사건이다.
그는 「닉슨」전대통령이 사건을 은폐했다는 확증을 잡고는 「닉슨」대통령이 사임하지 않을 수 없는 방향으로 사건조사를 이끌고 갔다.
일단 「닉슨」대통령이 사임한 뒤에는 「포드」 전대통령이 「닉슨」을 사면하는 쪽으로 유도했다. 젊은 검사들의 반발, 사임소동이 나고 「워터게이트」사건수사는 거기서 끝장이 나고 말았지만 「재워스키」검사 자신은 이렇다 할 상처하나 입지 않았고 「워터게이트」사건조사에 관한 「권리와 권력」이라는 책을 써서 이미 부자인 그가 더욱 부자가 됐다.
이런 사정으로 하여 「재워스키」검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이번 사건조사에서도 아무도 흡족하게 하여 주지도 않고, 그리고 아무도 노발대발하게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사건을 처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워싱턴=김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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