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악담 일본인들] 이웃 비극 위로는 커녕 비아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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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1일 오전 일본 민영방송의 한 토론 프로그램에 일본 정부의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영토담당상이 출연했다. 독도 문제로 한국을 자주 자극하는 인물이다. 다른 문제도 논의됐지만 메인 테마는 한국의 세월호 참사였고, ‘한국은 왜? 안전경시’라는 부제도 붙었다.

사회자를 포함한 9명이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발언권을 얻은 야마모토는 “출연해서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며 엉뚱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후 한국의 경제성장은 일본의 경제모델을 참고로 한 것이다. 일본이 평화국가로서의 길을 걸어오면서 전후 한국에 큰 경제협력을 했다. 당시 한국 국가예산보다 많은 5억 달러를 제공했고, 서울의 지하철과 제철업계의 기술협력 등 각종 지원을 했다. (한국 국민은) 일본이 전후 한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얼마나 공헌했는지를 알았으면 한다….” 한마디로 ‘한국이 고마움을 모른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일부 출연자의 면면을 볼 때 수준 높은 토론을 기대하긴 무리였다.

 『악한론(악한 한국론)』 『매한론(어리석은 한국론)』 등 혐한 서적을 잇따라 펴낸 전직 언론인 무로타니 가쓰미(室谷克實)가 대표적이었다. 한국에 대한 악담으로 토론의 흐름을 끊었다. 그는 “한국은 전통적으로 뇌물이 윤활유가 되는 나라다. 순찰을 도는 경찰들은 주차위반을 할 수밖에 없는 상점들에서 뇌물을 받고, 다시 윗사람에게 준다”고 주장했다. 사회자가 ‘한국과 어떻게 지내야 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하자 무로타니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일본에 대해 욕을 한다. 보통의 이웃 나라로 볼 수 없다”고 답했다.

 무로타니만큼은 아니었지만 다케사다 히데시(武貞秀士) 다쿠쇼쿠대 객원교수의 발언도 자극적이었다. 한국의 고속철도 도입 과정에서 일본이 아닌 프랑스 모델이 선정된 것을 두고 “터널이 많은 한국엔 터널의 압력에 잘 견디는 차량을 만들 수 있고, 차량 유지도 세계 일류인 일본밖에 없었는데 감정적이고 비합리적 결정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에 머리를 낮추지 않겠다는 기분은 알겠지만…”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나 야스쿠니·교과서 문제는 다른 주머니 속에 넣고(보류하고), 위기관리에 대해선 ‘일본을 배우자’고 하면 (한국의 안전 문제) 대부분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함께 출연한 한국인 여교수가 홀로 고군분투했지만 수적 열세는 어쩔 수 없었다. 이웃 나라의 초대형 비극인 세월호 참사에 일본 언론들은 한국 언론 못지않게 관심을 표하고 있다. 아직도 세월호 관련 소재를 매일 오후 한 시간 가깝게 전하는 지상파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일부 방송의 출연자가 한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면서 “한국 언론은 정부가 압력을 넣으면 비판을 잘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등 은근슬쩍 한국을 폄훼하는 장면도 적지 않다. 이웃 나라의 비극을 위로하고 반면교사로 삼는 수준을 넘어 자칫 세월호가 새로운 혐한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든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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