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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행정기능 통째 민영화 … 미국 '계약도시'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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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09년 8월 미국 조지아주 샌디스프링스의 사우스스팰딩레이크가(街)에서 시와 계약을 맺은 건설회사 직원들이 도로 재포장 공사를 하고 있다. 2005년 12월 이후 이 도시에선 경찰과 소방서를 제외한 모든 행정 기능이 민간업체로 넘어갔다. [사진 샌디스프링스]

‘공공서비스 민영화 (Privatization of Public Service)’. 요즘 미국 사회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각종 증명서 발급, 쓰레기 수거에서 치안 유지까지 국가·자치단체의 몫으로 여겨지던 기능들이 줄줄이 민간 섹터로 넘어가고 있다. 연방정부의 천문학적 재정적자로 지방 도시로의 보조금이 줄어든 탓이다. 일부 도시에선 주정부 등이 제공하는 기존의 행정 서비스가 형편없다며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민영화를 단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논란도 거세다.

연방 보조금 줄자 ‘아웃소싱’ 바람

 지난달 29일 미국 조지아주에서는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일어났다. 나탄 딜 주지사가 요즘 미국에서 확산 중인 ‘민간 보호관찰 회사(private probation firm)’에 대폭적 재량권을 주는 법안에 거부권을 던진 것이다. 민간 보호관찰 회사란 국가와 지자체를 대신해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합당한 조치를 내리고 수수료를 받는 업체다. 예컨대 과속·신호위반 등으로 딱지를 뗀 운전자에게 통지서를 보내 벌금을 대신 받거나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경찰에 통보해 철창에 보낸다. 미국 지자체들이 벌금 징수 및 사후 관리를 민간 회사에 맡기는 이유는 물론 예산 때문이다. 현재 보호관찰 회사를 이용하는 주는 전체 50개 중 조지아·플로리다 등 12개에 달한다.

 문제는 돈벌이에 혈안이 된 이 회사들이 딱한 사정의 빈곤층마저 무차별적으로 감옥에 보낸다는 거다. 과거엔 돈이 없어 못 내는 게 인정되면 법원에서 벌금을 깎아주거나 면제해줬다. 인정사정없는 보호관찰 회사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자 결국 지난해 9월 조지아주 법원은 이들 업체가 마음대로 감옥에 보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또 이들 회사가 얼마나 돈을 버는지 공개하라는 압력도 커졌다.

 궁지에 몰린 업체들은 로비스트를 고용, 주의회 의원들을 설득해 보호관찰 회사들의 재량권을 확대하고 재정 상황 비공개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주 재정을 개선하기 위해선 이들 회사의 원활한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자 보호관찰 회사들의 횡포를 조장한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미국의 대표적 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는 올해 2월 민간 보호관찰 회사에 관한 특별보고서를 내고 실태와 부작용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런 반발 끝에 결국 딜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임금 싼 직원 고용해 서비스 질 엉망

 이뿐만이 아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범죄로 감옥이 부족해지면서 교도소 건설과 운영을 회사로 넘긴 지는 오래다. 30년 전인 1984년 테네시주 해밀튼카운티가 CCA란 업체와 계약을 맺어 처음으로 사설 교도소를 열었다. 이후 마약과의 전쟁 등으로 수감자가 폭증하면서 2011년 현재 107개의 사설 교도소가 미 전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또 운전면허 시험과 면허증 발급 등 관련 업무도 민간업체가 담당한다. 이들 민간업체들은 대부분 임금이 싼 대신 교육수준이 낮은 직원들을 고용해 불친절하고 서비스가 엉망인 것으로 악명 높다.

 최근 들어선 시의 행정기능을 모두 개인업체로 아웃소싱해 해결하는 소위 ‘계약도시(contract city)’까지 등장했다. 미국 조지아주의 주도(州都) 애틀랜타 북쪽 외곽에 자리 잡은 샌디스프링스가 대표적인 계약 도시다. 첨탑 모양의 몇몇 고층 빌딩 외에는 높은 건물이라곤 없는 이 소도시는 당초 애틀랜타에서 일하는 샐러리맨들을 위한 베드타운으로 개발됐다. 인구 9만여 명의 이 도시도 과거엔 시청 직원이 행정 서비스를 담당했으나 2005년 12월부터 거의 모든 업무를 개인기업으로 넘겼다.

 서류 발급은 영국계 다국적 회사인 서번 트레트가 처리하고 건축 허가 문제는 보스턴 소재 콜래버라티브사 직원과 상담하면 된다. 쓰레기 수거는 샌프란시스코 URS에 맡겼다. 시 당국이 운영해온 법원마저 제이컵스라는 엔지니어 회사가 관리한다. 심지어 시청 건물도 팔았다. 시 행사가 필요하면 장소를 빌려 치른다. 수십 명에 달했던 시청 직원도 사라졌다. 필요한 회사 선정 및 계약을 담당하는 6~7명의 직원이 전부다. 시가 직접 운영하는 조직은 단 2개. 자치경찰과 소방서뿐이다. 당초 이들 조직까지 아웃소싱하려 했지만 시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가 너무 많았다. 대신 경찰 신고 접수 서비스는 옆 마을로 넘겼다.

행정도 빈부 격차 … 또 다른 양극화 논란

 2010년 캘리포니아 메이우드 역시 시장과 매니저 등 최소한의 직원을 제외한 시청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관련 업무를 개인기업에 맡겼다.

 계약도시의 원조는 레이크우드라는 캘리포니아 LA카운티에 자리 잡은 소도시다. 레이크우드도 일부 행정기능을 아웃소싱했다. 다만 민간기업이 아닌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계약을 했다. 치안은 이 도시가 속한 LA카운티 경찰국에 맡기는 식이었다.

 계약도시가 생긴 이유는 예산 절감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이 속한 카운티(여러 도시들로 이뤄진 지방행정단위)의 행정 서비스 수준에 불만이 생겨 자체적인 계약도시로 탈바꿈한 경우도 많다. 샌디스프링스가 그런 사례다. 샌디스프링스의 행정 서비스는 2005년까진 이 도시가 속한 풀튼카운티가 대행했었다. 그러나 저소득층이 많은 풀튼카운티는 세수 부족으로 수준 높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 샌디스프링스 주민들이 독립해 나온 것이다.

 이런 배경으로 계약도시가 지역적인 양극화를 부채질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부자들과 빈민들이 따로 살면서 질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행정 서비스를 받게 돼 ‘두 개의 미국(two Americas)’ 현상이 심화된다는 주장이다.

 두 개의 미국이란 2008년 민주당 대선 주자였던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이 사용해 큰 주목을 받은 개념이다. 미국은 엄연히 한 나라임에도 엄청난 학비의 사립학교와 수준 낮은 공립학교가 공존하는 등 치안·의료시스템 모든 분야에서 부자와 서민이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에드워즈 전 의원은 특히 미국 남부에 엄청난 피해를 준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를 이 개념으로 분석해 큰 공감을 얻었다. 허리케인이 몰려오는데도 빈곤층은 도망칠 자동차도 없어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런 터라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들은 계약도시의 확산에 따른 부작용을 개선하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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