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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민을 멀리하는 한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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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장마철을 맞았는데도 한강은 전처럼 범람하지는 않는다. 상류의 「댐」들이 수량을 많이 조절해주는 까닭이다. 그러나 한강은 수도 서울의 도심 속을 흐르면서 아직도 시민들을 가까이할 줄 모른다. 시민이 외면하는 게 아니라 강이 사람들을 기피하고 있다.
강의 양 기슭에 길이 훤히 트이고 다리도 촘촘히 놓여졌는데 왜 그리 한적하기만 한 것일까. 인도교 부근은 개구쟁이 어린이들마저 모두 쫓아버리고 가끔가다 작은 고깃배 한두 척이 잠자는 듯 흘러갈 뿐 이 무더운 철에도 생기가 없다. 영동 앞의 질펀한 사장도 별 쓸모 없이 버려졌고 뚝섬과 광나루부근만이 여름한철 복작거린다.
하지만 이제 한강은 수도복판의 대동맥.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두드러지게 부각돼있다. 급증하는 주택가에 밀려 녹지가 모두 찌부러들었으므로 그나마 남은 산들과 조화를 이루어 도시의 경관과 휴식처를 구성하는 모체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강은 자연이 부여한 이 좋은 혜택을 가꿔서 유효한 터전으로 꾸며지지 못하고 있다.
68년이래 서울시는 한강 개발의 주요성을 깨닫고 여의도의 택지화, 낡은 제방의 보강, 강변도로와 교량의 신설 등 눈부신 건설을 꾀해왔다. 『한강변의 기적을 이룩하자』는 게 이때의 「캐치·프레이즈」. 강변을 메워 고층「아파트」가 즐비하게 본보기로 들어서고 신설도로는 고속화돼 교통의 원활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있다.
하지만 그러한 건설은 결코 강 자체를 다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자원을 활용한다든지 갈수록 절실해지는 풍치지대의 형성과 시민의 광장으로서의 공원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은 못되었다.
오히려 강변도로는 철책으로 겹겹 둘러 시민들이 종전처럼 강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시켜버렸다. 물이 오염됐다는 이유로 개구쟁이의 놀이터가 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현상은 허허로운 강줄기뿐. 이대로 방치하다간 정말 죽은 한강이 될까 두렵다.
천혜의 강줄기가 서울의 장애물이 된대서야 안될 말이며, 더구나 강남과 강북의 거리감·이질감은 앞으로 어쩔 것인가. 가장 효과있는 활용에는 「파리」「스톡홀름」「취리히」「캔버라」「런던」등 구미의 여러 도시에서 본받을만한 일. 홍수의 위험이 해소되고 충분한 유량이 유지된다면 이에 따른 새로운 계획이 모색돼야하기 때문이다. 도시생활에는 시민이 자연적으로 어딘가 모여드는 장소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시민의 광장은 역사적으로 대중운동의 시발점이 됐었고 오늘날에도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민주화정신을 도시구조 속에서 가꿔나가려면 필연적으로 시민이 자유로이 모이는 장소가 있어 얘기를 나누고 휴식을 취하는 구실을 맡아줘야 한다.
그런데 오늘 서울에는 길은 있어도 한폭의 광장이 없다. 이조의 봉건적 사회체제 속에서 청계천 변은 광장구실을 했고 특히 남산은 근래까지 그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남산은 현재 비좁은 통로의 전망대라 할까. 명색만 공원일 뿐 공원의 소임을 전혀 못하는 터여서 광장은 더욱 아니다.
풍족한 물과 싱그러운 공기, 그리고 아름다운 경관이 쾌적하게 펼쳐질 수 있는 땅이라면 서울의 현황에서 한강변 이외에 어딜 더 지적할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서울시내를 굽이 드는 30여㎞의 강줄기를 공원으로 지정, 새로운 면모로 이용하는 방법을 검토하자고 제의한다. 무질서하게 즉흥적으로 개발할 것이 아니라 강이 지닌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 방향에서 그 가치를 높이자는 주장이다.
그런 일환으로 하류인 행주쯤에 4m의 「댐」을 막는다면 마포 앞까지 바닷물이 밀어 들어오는 것을 막음은 물론 영동교께까지 호반화되리라고 내다본다. 그것은 농업·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도시환경을 개선하는데 뜻이 있다.
강기슭에는 택지조성만 주안점을 두어왔는데 이제는 군데군데 숲을 만듦 직하다. 서울의 도심에 녹지를 확보할 수 있는 여지란 역시 한강 기슭이 가장 적격이며 강남이 확장될수록 녹지에 대한 요청은 절실해지리라.
강물이 현재처럼 퍼져 흐르게 하지 말고 저수로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그러면 한 단계 높은 모래펄의 고수부지가 좋이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재의 강변도로 안쪽에 한층 낮춰 산책로와 휴식처를 마련하자는 의견은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요청인 것 같다. 도보산책로는 평상시의 수위에서 1∼2m 높은 위치에 마련하고, 길에는 차가 일체 못 들어가게 한다. 산책로의 포장은 「시멘트」나 「아스팔트」사용을 일체 피하고 냇돌을 깐다면 더욱 이상적이다.
1차로 유휴사장이 넓은 용산 앞과 영동 앞쪽에서 시험해봄직 하며 그 사이를 나룻배로 연결하면 「버라이어티」도 생기게 된다. 강물이 상류부터 정화되면 더욱 바람직하지만 우선은 밝고 시원한 휴식공간만으로도 족하다.
서울의 중심지가 될 한강이 오탁한 배수로 구실밖에 못한다면 중대하고 심각한 과제다. 그것은 시민의 생활환경과 직결된 신선한 숨통이어야 하고 창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글 이종석 기자】

<도움말 주신 분>
곽영훈<홍대 이공대 교수>
변종하<서양화가>
김수근<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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