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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폐유사건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나라 최대의 해수욕장인 부산해운대를 비롯한 송도·송정·일광 등 유명해수욕장들이 폐유로 오염돼 잠정적이나마 페쇄됐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피서철의 해수욕장을 온통 시커멓게 덮어버린 이번 폐유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단순한 사고라기보다는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렵혀져 죽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연안 바다의 말기적 자각증상일 가능성 마저 없지 않아 여기 새삼 경종을 울리며 앞으로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연안해수는 전반적으로 폐유에 의한 오염이 수산자원보존상의기준치인 50PPM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는 진단이 벌써 오래 전부터 나와있는 터다.
얼마 전 수산진흥원 등 관계기관이 실시한 연안수질 오염조사만 보더라도 울산만이 71PPM, 부산항이 61.8PPM, 진해만이 60.2PPM, 마산만이 69.2PPM으로, 그 중에도 특히 인천만은 무려 95PPM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지만 곳곳에 들어선 임해공업단지와 석유산업 「콘비나트」 가 쉴새없이 폐유찌꺼기 등 산업폐기물을 쏟아내 맑게 보존돼야할 바다가 시궁창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다 대한을 누비는 대형 유조선이 유출하는 유류피해까지 겹쳐 우리의 생활로부터 한시도 뗄 수 없는 바다의 오염은 갈수록 증대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하겠다.
유류에 의한 오염은 바다의 산소생산 능력을 감소시켜 자체 정화기능의 마비를 초래하고, 해수표층의「플랑크톤」을 사멸시켜 어족을 비롯한 수산자원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만다.
이처럼 가공스런 타격을 주는 유류는 불과 1백 배럴」만 떨어져도 잔잔한 바다에서는 1주일이내에 8평방 「마일」로 확산되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선박 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유류에 의한 바다의 오염을 막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해양오염 방지법을 마련, 이를 엄중히 다스리고 있다.
영국은 67년 「리베리아」 국적유조선 「토리·캐년」호가 8만여t의 원유를 쏟아 서남부해상의 황금어장을 망쳐 놓은 사건을 계기로 서둘러 해양오염방지법을 제정했다.
7O년에는 미국과 일본도 이 같은 법을 제정한 것을 비롯, 전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입법조치를 통해 자기네들의 연근해를 강력히 보호하고 있다.
이에 앞서 54년5월12일 「런던」에서 조인된 「유류에 의한 해양오염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에서는 해수욕장으로서, 그리고 관광휴양지로서의 연안을 보호하기 위해 연안으로부터 50해리에 이르는 금지구역을 설정, 이 구역 안에서는 유류는 말할 것도 없고 기름성분이 1만 분의 1이상인 유성혼합물까지도 해중투기를 금지토록 했다.
이 협약은 62년4월11일 및 69년10월21일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되면서 50해리이던 금지구역을 1백 해리로 확대하고 유조선 및 기타 유류 사용 선박에 대해 유류의 유출 또는 폐기상황을 자세히 기록해야 하는 「유류기록부」의 비치를 의무화하는 등 강제규정을 강화해왔다.
세계적인 추세가 이러한데도 우리는 기껏 개항질서법과 오물청소법외에 해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류오염을 전문적으로 규제할 법적 근거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지내오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선박으로부터 흘러나온 유류로 손해를 입는 경우 누구든지 불법행위에 관한 일반원칙에 따라 선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설사 청구권을 행사한다 할지라도 선주 측의 고의 또는 과실여부는 물론 그것과 손해사이의 인과관계의 입증이 어려운 데다 선주의 배상능력이 없을 때도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효과적 대책이 되지 못하는 것은 뻔한 일이다.
이렇게 볼 때 유류에 의한 바다오염은 무엇보다 사전에 유류의 유출을 근본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연해가 바로 어민의 생활터전인 어장이고 또 해안선을 따라서 유류오염에 유난히 민감한 김·굴 등 각종 해조류 및 어패류의 양식장이 즐비한 것을 상기할 때 바다오염방지를 위한 국가적인 노력과 대책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시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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