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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너무 가벼운 한 강경파 의원의 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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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형수
김형수 기자 중앙일보 부장대우
8일 오후 의원총회에 참석한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 [김형수 기자]
하선영
정치국제부문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지난 2일 국회의원 사직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당 지도부가 정부와 새누리당이 주장해온 기초연금법안을 국회에 상정할 수 있도록 합의해준 데 대한 반발이었다. 법안은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하되 국민연금을 적게 받는 저소득층에는 기초연금을 상한액(20만원)까지 매달 주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야당의 요구도 부분적으로 포함돼 있는 절충안이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절충안마저 끝까지 반대한 ‘강경파’로 꼽혀왔다.

 김 의원은 사직서를 내며 “우리 당이 조금이라도 자존심이 있다면 이렇게 할 수는 없다”고 지도부를 비판했다. “사직서가 수리되면 어디 시골 대학으로나 가겠다”고 했다.

 그러던 김 의원이 7일엔 달라졌다. 이번엔 당에 제명을 요구했다. 비례대표인 김 의원은 제 발로 당을 걸어나가면 의원직을 잃는다. 그러나 당이 내보내면 의원직은 유지할 수 있다. 닷새 만에 무소속으로라도 의원은 더해야겠다는 쪽으로 입장이 바뀐 것이다. 김 의원이 이날 새정치연합 의원 전원에게 돌린 편지의 일부분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사직서를 도로 받아 오고 싶다. 저는 아무렇지 않게 의원직을 사퇴할 인물이 못 된다. 혹시 의원님들이 보시기에 제가 국회의원을 더 하는 것이 좋겠다면 저를 당에서 제명해서 나머지 임기를 마치게 해달라.”

 소신과 맞지 않는 당론이 채택됐다고 해서 무턱대고 의원직을 내던져놓곤 이제 와서 자신을 공천한 정당에 ‘나를 제명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원직을 볼모로 삼은 너무 가벼운 처신이다.

 김 의원은 8일 모든 정치 일정을 정상적으로 수행했다. 오전에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장애등급제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오후에는 원내대표 경선에 참여해 투표도 했다. 정말 금배지를 떼기 전까지는 매월 1200여만원의 세비도 꼬박꼬박 받아갈 것이다.

 물론 처음 보는 장면은 아니다. 2009년 민주당 대표였던 정세균 의원과 천정배·최문순·장세환 의원 등이 미디어법 처리에 반발하며 의원 사직서를 냈다가 조용히 국회로 되돌아온 적이 있다. 툭하면 의원직을 던지겠다고 나서지만 정말 의원직을 물러난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10년간 진짜 사직서가 처리된 경우는 2005년 세종시 건설에 반발하며 사직서를 제출한 박세일 한나라당 의원의 사례가 유일하다.

 2년 전 김 의원은 국회에 처음 등원한 날 본회의장에서 이렇게 맹세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김 의원이 맹세한 ‘성실한 직무 수행’은 어떤 건지, 그때의 선서를 기억하고 있는지조차 궁금하다.

글=하선영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