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물·식량 바닥 … 이라크인 '고통의 나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바그다드로 진격하는 미군에게 이라크 어린이들이 손을 벌린다.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이다. 미.영군의 공격을 피해 피란길에 오르며 굶주림에 시달린 탓이다. 등에는 자기 덩치보다 더 큰 짐을 지고 어른들을 따라간다. 알 자지라 등 아랍방송과 서구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며 이라크인들의 생필품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다. 국제구호기구들의 구호품 보급항인 움 카스르의 선박 출입이 중단된 가운데 생필품을 실어나르는 트럭 운행마저 거의 끊겨 이라크 전역이 물.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미.영군에 포위된 바스라.나시리야.나자프.카르발라 등의 주민들은 식량 비축분이 거의 바닥나 포위 공격이 장기화할 경우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할 것이라고 국제구호기구들은 경고하고 있다.

러시아 RTR TV는 1일 종군기자 르포를 통해 "이라크 남부 바스라의 식량 비축분이 거의 바닥 나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며 "마실 물도 부족해 주민들이 더러운 개울물을 길어와 끓여 마시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도 1일 "이라크 시아파 중 남부 습지의 소수 부족들은 밀가루와 식수 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들 종족은 토마토와 오이.양파 등을 재배해 생활해 왔는데 전쟁으로 시장이 폐쇄되며 생필품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파견한 교사와 의사도 이미 피란갔다"고 전했다.

세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수가이르(45)는 "물과 밀가루만 있으면 좋겠다"며 "30년 전이 훨씬 나았다"고 한숨지었다.

이라크는 전쟁 이전에도 전체 인구 2천7백만명 중 60%가 유엔의 석유.식량 프로그램에 의해 공급되는 식량으로 살았다. 이는 이라크의 원유 수출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되 그 대금으로 이라크 국민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유엔은 전쟁에 따른 생필품 부족 등으로 최소 7백40만명 이상의 이라크인이 고통당할 것으로 추정했다.

움 카스르를 장악하고 있는 영국군 측은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수뢰를 제거해 구호물자가 해상을 통해 운송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제임스 모리스 유엔식량계획(WFP)사무총장은 지난달 31일 "이라크인들이 생필품 부족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며 유엔에 13억달러 규모의 긴급 식량원조를 요청했다.

정재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