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문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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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드디어 의료보험의의 진료단가와 약값 기준이 확정되었다. 보사부말로는 현재 받고 있는 것보다 25% 낮췄다고 한다. 일반 병원 쪽 말로는 68%나 깎였다고 한다.
어쨌든 병원문턱이 그만큼 낮아진다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꼭 드나들기 쉽게 될 것 같지도 않다.
의술도 요새는 일종의 「서비스」업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말하는 의사도 있다.
「서비스」업에서 값을 내렸다면 그만큼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의료수가가 점수제로 되어 그 이상은 늘려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없다지만 그래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우선 치료에 1주일을 요하는 병을 2주일로 만들면 된다. 술집에서 물 탄 술을 파는 요령을 쓰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염려되는 것은 의사의 성의다.
종합병원의 의사는 하루 1백명 이상의 환자진단을 본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입원환자를 위한 회진을 해야한다.
아무리 명의라 하더라도 오진율은 15%가 넘는 게 보통이다. 보통의사가 고막이 터질 정도로 청진기를 대고 있다면 제대로 진료하기는 어렵다.
비싼 병원일수록 환자들이 더 몰리는 것은 좋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다.
만약에 누구나가 똑같은 진료비를 내야한다면 의사의 서비스(?)도 기계적이 될 수밖에 없다.
밤중에 임종이 다가온 환자가 생겼다. 동네 의사에게 급히 달려갔다. 그러나 의사는 안 계시다는 간호원의 말이었다.
싸움 싸우듯 하여 30분 후에 간신히 의사의 목소리만이라도 들을 수 있었다. 대충의 용태를 듣고 난 다음에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하고는 다시 문을 닫고 말았다.
그제서야 종합병원에 연락하였다. 여기서도 구급차는 1시간 후에나 보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는 사이에 결국 1시간이 달아났다. 그리고 환자도 숨을 거두었다. 만일에 동네 의사가 제때 달려와서 응급조치라도 해주었다면 혹은 환자도 목숨을 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게 다급한 때에는 돈이 문제되지도 않는다.
그런줄 알면서도 그 의사는 혹시나 죽는 환자를 받지나 않을까 염려해서 왕진을 안한 것이었다.
뒤늦게나마 종합병원에서 의사가 오기는 왔다. 만약에 점수제에 의한 의료보험에 든 사람이라면 그래도 의사가 달려왔을까?
병환문턱은 낮아진다지만 조금도 드나들기 쉽게 되지는 않았다. 진료실은 더욱 숨막히도록 살풍경해질 게 틀림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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